한국에서 여자는 어떻게 사는가… 원로작가 윤석남 회고전 ‘심장’
ㆍ여자의 삶은 눈물이고 사랑이다
▲ 한국 여성들의 삶과 정서
서정적이면서 호소력 짙게 창조
여성주의 미술가로 ‘우뚝’
“김만덕의 심장은 사랑입니다. 심장에서 흘러내린 눈물이 쌀이 된 거죠.” 원로작가 윤석남씨(76)가 ‘심장’이란 제목으로 서울시립미술관 본관에서 개인전을 열고 있다. 격년으로 원로작가를 초대하는 시립미술관이 김구림에 이어 두 번째 초대한 작가다. 성균관대 영문과를 중퇴한 그는 평범한 주부로 지내다가 마흔 살에 미술작업을 시작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 조건에서 자신의 어머니를 비롯한 한국 여성의 삶과 정서를 서정적이면서 호소력 짙은 작품으로 창조해 여성주의 미술가로 우뚝 섰다.
이번 전시는 1979년 작업을 시작한 지 36년 만에 열리는 중간 회고전이다. 어머니를 그린 유화부터 김만덕을 비롯한 여성 역사인물 시리즈까지 그간의 화업을 어머니, 자연, 여성사, 문학 등 네 가지 주제로 정리했다.
“작가가 돼서 가장 좋았던 것은 남들에게 인정받고 유명해지는 게 아니라 내 작업실에서 마음껏 일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주부의 삶에 회의를 느낀 그는 1979년 4월 남편의 한 달 월급을 모두 털어 화구를 산 뒤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첫 소재는 39살에 남편을 잃고 6남매를 키워낸 어머니였다. 작가의 아버지는 한국 최초의 영화감독 윤백남인데 그가 15살 때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의 삶은 서민 여성들의 고단한 삶으로, 이후 작가의 관심은 생태와 환경, 역사로 확장됐고, 재료도 다양해졌다.

윤석남 화백이 ‘김만덕의 심장은 눈물이고 사랑이다’ 앞에 서 있다. |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전시장에는 여성 한 사람 한 사람이 빛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999개 나무 막대에 그림을 그린 ‘빛의 파종’(1997), 머리에 큰 고래를 이고 팔을 길게 아래로 뻗어 물고기들을 몰고 가는 모습을 나타낸 ‘어시장 2’(2003), 유기견 1025마리를 거둬 기르는 이애신 할머니의 삶에 감명을 받아 같은 수의 조각을 한 ‘1025: 사람과 사람 없이’(2008), 어머니의 죽음을 맞아 다양한 여성의 모습을 오려낸 한지 1000여장 등으로 추모의 정을 표현한 ‘화이트 룸-어머니의 뜰’(2011) 등 시기별 대표작들이 고루 선보인다.
윤 화백은 학자 등과의 교류를 통해 여성주의 확산에도 중요한 몫을 했다. 1982년 첫 개인전을 계기로 만난 김인순·김진숙 작가와 ‘시월모임’을 결성해 1985년과 1986년 ‘시월모임전’을 열었다. 한국 여성주의 미술의 시초로 평가된다. 또 ‘또 하나의 문화’ 동인들과 교류하면서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여성문제를 탐구하는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고정희·강은교·천양희·김승희 등의 시를 바탕으로 한 시화들이 탄생했다. 작가는 “여성주의란 말을 이 무렵 처음 들었다. 이 말을 가슴에 품고 감동만이 아니라 사회분석이 들어 있는 작품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의 표제작인 ‘김만덕의 심장은 눈물이고 사랑이다’는 그가 생각하는 여성적 사랑의 절정이다. “김만덕의 삶을 듣고 눈물을 흘렸다. 전 재산을 털어 굶어죽는 사람들을 살리고자 한 그의 사랑은 어떤 남성도 따라올 수 없다.” 너와 조각에 여성의 얼굴을 그린 ‘너와’ 시리즈 역시 신작이다. 전시장 출구에는 1993년과 2015년 자화상이 마주 걸려 있다. 엄격함이 사라진 자리에 자유로움이 들어왔다. 신작 자화상에는 연필 글씨가 빼곡하다. ‘바람이 분다 불어라 쉼 없이 불어와 날려버려라 끊임없는 너의 길을 달려라 아무도 막지 못하게 달려라….’ 6월28일까지. 5월9일 작가와의 대화(대담 윤난지 이화여대 교수)가 열린다. (02)2124-8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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