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고재, 윤석구·윤석남 2인전《뉴 라이프(A New Life)》
4..26~5.25, 학고재 본관, 학고재 오룸
회화, 조각 총 110여 점
[서울문화투데이 김연신 기자] 윤석구·윤석남 남매작가가 공식적으로 함께 하는 첫 전시가 학고재에서 열린다. 윤석남(尹錫男, 1939-) 작가와 윤석구(尹石九, 1947-) 작가의 2인전 《뉴 라이프(A New Life)》를 오늘(26일)부터 내달 25일까지 학고재 본관, 학고재 오룸에서 만나볼 수 있다.

▲《뉴 라이프(A New Life)》전시 전경 (사진=학고재)
윤석남은 해방 전 혼돈의 시대에, 만주에서 태어나 온갖 역경을 겪고 극복하여 여성으로 사는 삶의 의미를 찾았고, 그 의미를 미술로 표현했다. 윤석구는 인간과 대상(세계)이 화해하는 방법을 모색해 왔다. 속박된 일상 사물의 구휼(救恤), 그것이 윤석구가 가는 길이다. 두 작가의 마음속 깊은 곳에 진혼가(鎭魂歌)가 흐른다.
두 작가의 작품은 진혼의 의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번 전시에서 윤석남이 천착해 온 여성주의 예술의 진가는 배가되고 윤석구의 ‘레디메이드’ 혹은 ‘발견된 사물(found object)’의 의미는 증폭된다.
윤석남: 시적 드로잉의 진수와 여전히 진행 중인 여성의 고난
윤석남은 아시아를 대표하는 여성주의 작가다. 조선시대 전설의 여류작가 허난설헌(1563-1589)의 생가에서 깨우침을 얻어, 생가에서 주운 나뭇가지에 조각도로 인물 형상을 새기고 붓으로 그려서 독자적인 조각을 제작했다. 독특한 조각작품에서 허난설헌이 돌아온 듯 되살아났고 한국 미술계는 찬사를 보냈다. 이후 어머니, 가족, 여성을 주제로 수많은 드로잉과 회화 작품을 선보였으며, 조각을 지속했다. 이 드로잉과 조각은 독자적 형식으로서 의미가 있을 뿐만 아니라, 한 개인의 삶과 의미가 체현되었기에 깊은 여운을 남긴다.
윤석남의 드로잉 작품은 완성작을 위한 밑그림이나 습작이 아니라 여성주의적 성찰과 꾸준한 독서를 통해 축적된 문학성이 배어나는 글과 그림의 예술적 조합으로 이뤄진다. 팔십 중반의 윤석남에게 책 읽기는 여전히 그림 그리기와 더불어 몸에 익은 습관처럼 빼놓지 않고 행하는 하루의 일과다. 여러 단계의 복잡한 제작 과정과 함축적 서사를 담은 입체 작업과 비교해, 자발적으로 떠오르는 이야기나 형상을 단시간에 즉흥적으로 그리고 글귀를 써넣은 그의 드로잉은 새로운 형식의 그림일기를 연상시킨다. 그것은 여성으로서 자전적 경험과 생각들, 친밀한 인간관계에 대한 단상들, 문학에서 떠오른 영감 등 시간과 공간이 자유롭게 교차하며 자발적으로 흘러나온 시적 성격이 강하다. 유머와 재치가 넘치고 공감과 상상력을 자극하면서도 직관적인 독해가 가능한 윤석남의 드로잉은 묵직한 현실 문제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게 하는 힘이 있다.

▲윤석남 YUN Suknam, 감 사세요 Persimmons for Sale, 2001, 종이에 색연필 Colored pencil on paper, 45x30cm
윤석구: 생태ㆍ환경ㆍ삶의 의미와 조각이 나아가야 할 길
윤석구 역시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진혼의 의미로써 이야기를 쓴다. 전통적인 나무 조각을 고수했던 작가는 어느 날 조각 재료를 구하다 쓸모 있는 나무는 (작가에 의해) 채택되며, 그렇지 않은 나무는 버려지는 사실을 깨닫고 개탄했다고 한다. 곧고 굵게 자라지 않아도 나무이거늘, 가늘고 퍼진 나무는 골라서 도륙하는 것은, 조각가의 작업 방식이 될 수는 있을지언정 예술가의 마음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버려진 나무를 작업실에 가져와 가장 화려한 천(옷감)을 입혔다. 화려한 천은 동시대 문명을 상징한다. 문명으로써 상처 입은 나무를 위무하는 것, 즉 죽은 사물의 혼을 달래는 행위를 자기 예술의 본령으로 삼은 것이다. 이때가 2000년대 초반이었다.
이후 윤석구는 버려진 나무에서 버려진 사물로 시야를 확장했다. 폐기물, 가령 의자ㆍ소파ㆍ화장대ㆍ자전거ㆍ자동차에 천을 감쌌다. 사물에 헝겊을 감싸는 행위는 하나의 의식이 되었으며 이로써 물질과의 화해를 선언했다. 작가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나아가 직접 형상을 만들어 천을 감쌌고, 일상 사물에 깃든 아름다움을 찬미했다. 버려진 사물을 찾아서 새 생명을 부여하여 재탄생시키는 작업 과정은 자본주의적 생산과 소비의 순환이 일으키는 생명ㆍ생태ㆍ환경의 파괴에 대하여 경종을 울리려는 의도가 숨어있다.
“새로운 삶”, “재탄생” 등으로 번역되는 “A New Life”는 윤석구 최근작의 주제이자 작업 개념, 작업 방법 전반을 아우르는 용어이다. 작가가 생각하는 “A New Life”의 의도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다양한 색과 무늬를 지닌 천의 시각적 특성을 살려서 상처를 품고 있는 버려진 대상들을 천으로 감싸줌으로써 새로운 생명으로 재탄생시키는 의식을 행하고자 했다. 그런 작품을 통해 그는 궁극적으로 물질만능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무엇이 옳은지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자 했다.

▲윤석구 YOON Seok-koo, A New Life (거울) A New Life (Mirror), 2020, 오브제, õ Object, cloth, 215x60x76cm
그의 신작에서 작업의 대상은 두 가지 계열로 나뉘는데, 작가의 기존 작품을 ‘개작’한 것과 주변에서 쓰다 버린 레디메이드를 재활용한 것이다. 윤석구가 본인의 기존 작품에 각종 천을 붙여 원작의 외양과 의미를 소거하고 새로운 작품으로 탈바꿈시키는 과감한 아이디어는 매우 흥미를 자아낸다. 그는 1970-80년대에 새로운 조각용 재료로 주목받던 합성수지(FRP)를 위주로 나무, 테라코타 등의 재료를 사용해 실존적 상황에 놓인 인간의 고뇌와 고통을 거칠고 왜곡된 대형 인체로 제작한 바 있다.
생명공학의 발전이 가져올 유토피아적 미래에 대한 비전과 비판이 충돌하고 유전자 조작이 사회적 이슈로 대두된 1990년대 중반에는, 합성수지로 매끈하게 주조한 대형 과일과 채소에 인공적인 색을 칠해 자연의 변종과 신품종 개량에 대한 경종을 울리고 물질적 욕망을 추동하는 자본주의를 비판하기도 했다.
김현주 미술사학자는 이번 전시 서문에서 “윤석남은 평등 사회 구현이라는 여성주의적 비전을 바탕으로 여성사를 발굴하고 여성에게 목소리를 되찾아주는 작업을 추구해 왔고, 윤석구는 물질만능주의 시대에 옳은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보편적인 질문에 답을 찾고자 했다”라며, “두 작가가 거쳐온 예술적 경로와 작품의 지향점은 비록 다르지만, 자본주의를 성찰하고 인간과 자연을 보듬고 살피는 태도는 남매가 매우 흡사하다”라고 평가했다.
출처 : 서울문화투데이
기사원문보기: http://www.sc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427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