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시명: 윤석구ᆞ윤석남 2인전: 뉴 라이프
전시기간: 2024.04.26 – 05.25
전시장소: 학고재갤러리
윤석남과 윤석구는 남매지간으로 각자의 예술 작업에 정진해 온 미술가이다. 근대 영화감독이자 소설가, 연출가인 윤백남과 원정숙 부부의 여섯 자녀 중 윤석남(1939-)은 둘째, 윤석구(1947-)는 다섯째로 8살 터울이다. 이 집안에서는 미술, 음악, 영화 등 다양한 예술 분야의 종사자들이 여러 명 배출되었다. 미술가로는 한국 페미니즘 미술의 초석을 다지고 그 길을 꾸준히 개척해 온 선구적 작가 윤석남이 익히 알려져 있고, 남동생 윤석구 역시 평생 미술에 헌신해 온 조각가이다. 서로의 예술을 지지하되 간섭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작업해 온 탓인지 두 작가가 남매란 사실은 미술계에서 아는 사람만 아는 정도다.
이번에 학고재가 기획한 윤석남, 윤석구 2인전은 공식적으로 남매가 함께 갖는 첫 전시다. 지금까지 두 작가가 미술로 뭔가를 도모한 사례는 2012년 전북 익산국제돌문화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제작한 조각이 유일하다. <휴식>이란 제목의 이 조각은 윤석남이 제안한 개념과 드로잉에 근거해 윤석구가 제작한 협업의 결과물이다. 윤석남 작품의 주요 소재인 소파와 개, 그리고 당시 윤석구의 관심사이던 나무를 상징하는 세 가지 형상을 익산에서 생산되는 화강암의 일종인 황등석으로 깎아 익산 중앙체육공원에 영구 설치한 작품이다.
윤석남은 좋은 전시 기회가 있을 때면 늘 후배 여성작가들과 공유하며 동반 성장을 도모해 왔는데, 본 전시에서는 최근 몇 년간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남동생 윤석구의 독특한 미발표 작품이 돋보이도록 조용히 뒤로 한걸음 물러나 있다. 평문을 준비하며 나는 평상시 서로의 작업에 관해 별로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다는 두 사람을 따로 만나 서로의 작업에 관한 생각을 물어보았다. 윤석남은 조용한 성격의 동생이 원광대학교에서 교육과 작업을 병행하느라 바삐 사는 것이 안타까웠는데, 은퇴 후 새로운 작업을 찾아 도약하는 모습에 안도하며 아낌없는 격려를 보내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한편 윤석구는 “누님의 조각과 회화적인 것을 결합한 나무 작업에서 큰 감명을 받았다”고 회고했다.[1] 덧붙여 말하길 그림을 그리다 나무를 조각해 그 위에 형상을 그린 작업 방식은 획기적이고, 매체의 경계를 중요시하는 미술대학에서는 배울 수 없는 전통 파괴의 가능성을 지녔다며 윤석남의 작품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이번 전시에는 윤석남이 2000-2003년 사이에 그린 700여 점의 드로잉 중 선별한 96점과 윤석구의 미발표 신작 15여 점이 출품된다. 1990년대 초부터 나무를 다듬어 그 위에 여성 인물을 그린 조각과 레디메이드를 활용한 설치 작품에 몰입해 오던 윤석남은 2000년대 초 작업에 대한 고민을 풀어내거나 ‘그리기’에 대한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 일정한 크기의 종이에 색연필과 연필을 이용해 수많은 드로잉을 남겼다. 2015년의 개인전 《윤석남♥심장》(서울시립미술관)에서 독립적인 작품으로 처음 소개된 드로잉은 다수의 전시에 출품되며 예술성을 인정받고 있다.
윤석남의 드로잉 작품은 완성작을 위한 밑그림이나 습작이 아니라 여성주의적 성찰과 꾸준한 독서를 통해 축적된 문학성이 배어나는 글과 그림의 예술적 조합으로 이뤄진다. 팔십 중반의 윤석남에게 책 읽기는 여전히 그림 그리기와 더불어 몸에 익은 습관처럼 빼놓지 않고 행하는 하루의 일과다. 여러 단계의 복잡한 제작 과정과 함축적 서사를 담은 입체 작업과 비교해, 자발적으로 떠오르는 이야기나 형상을 단시간에 즉흥적으로 그리고 글귀를 써넣은 그의 드로잉은 세로 형식의 그림일기를 연상시킨다. 그것은 여성으로서 자전적 경험과 생각들, 친밀한 인간관계에 대한 단상들, 문학에서 떠오른 영감 등 시간과 공간이 자유롭게 교차하며 자발적으로 흘러나온 시적 성격이 강하다. 그러므로 유머와 재치가 넘치고 공감과 상상력을 자극하면서도 직관적인 독해가 가능한 윤석남의 간결한 드로잉은 묵직한 현실 문제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도록 하는 독특한 성격을 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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