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나무에 생명의 소중함을 새기는 윤석남, 인천에 자리잡다

[유니온프레스=최진영 기자] “제 자식도 버리는 세상인데 개는 안 버릴까”(김혜영) / “버려진 모든 것들에게 죄스러움과 두려움을 느낀다”(김혜승) /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신유종)… (<인천상륙작전> 윤석남 작가 작품 ‘1,025’와 함께 전시된 70개의 줄글들에서 발췌)
윤석남 작가가 지난 2월부터 인천아트플랫폼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해 약 1년 동안 인천아트플랫폼에 머문다. 레지던시 프로그램에는 윤석남 작가 외에 27명의 작가들이 함께 참여하며, 참여 작가들은 지난 3월 12일부터 공동으로 전시를 열고 있다. 작가들이 인천에 상륙했다고 해서 일명 <인천상륙작전(作展)>이다. 전시장에서 그를 만났다.
윤석남 작가의 ‘1,025’, 그리고 70. 이 뜻 모를 숫자들은 무엇을 의미할까? 2008년 윤석남 작가의 <1,025: 사람과 사람 없이>展에서, 혹은 헐리기 직전의 기무사 건물 한 구석에서 한 무리의 나무조각 유기견들을 발견하고 가슴 아파했던 사람이라면 ‘1,025’가 뜻하는 바를 알고 있을 것이다. ‘1,025’는 작가가 5년간 하나하나 조각한 유기견들의 넋이다. 아직 승천하지 못한 불쌍한 넋들이 이번엔 인천에 상륙했다.
“이게 있으면 다 끝나는 얘기에요” 2008년 ‘1,025’에는 유기견들과 이들을 돌보는 할머니의 상이 함께 전시됐지만 이번 전시에는 할머니 대신 개들의 형상 위로 70여 장의 화선지가 새로이 추가됐다. 2008년 전시에서 관람객들에게 받아 모은 감상평을 적었다. 버려진 개들에게 혹은 개를 버린 사람들에게 던지는 한 마디 한 마디가 여러 가지 화두를 던지고 있다.
‘1,025’는 2011년 인천아트플랫폼 제2기 입주작가 전시 <인천상륙작전(作展)>에서 다른 작가들의 작품과 함께 전시되지 않고 특별히 A동 크리스탈 큐브 전시공간을 배정받았다. 유리벽 너머로 길이 훤히 내다보이는 이 공간에서, 전시장에 발을 들여놓지 않은 사람들의 눈길까지 사로잡으며 더욱 특별하게 사람들과 호흡하고 있다. 애처로운 유기견의 영혼들이 등을 돌리고 앉아 행인들의 궁금증을 유발한다.

윤석남 작가는 어머니와 여성, 평화에 대한 담론을 다루며 여성주의 미술의 대모로 불린다. 40대 중반 늦깎이 작가로 데뷔한 이래 그녀가 다뤄온 재료는 언제나 ‘나무’였다. “철이나 다른 재료들보다 나무가 따뜻하고 작업하기에도 편하다”는 것이 그 이유다. 여성의 소외와 아픔에 대한 작업들이 쓰다 버린 나무 위에서 더 애틋하게 다가오는 듯하다.
2008년 ‘1,025’가 단순히 유기견의 넋을 기리는 작품이었다면 2011년 지금은 또 하나의 의미가 더해졌다. 유기견 문제가 여전히 존재하거니와 우리는 얼마 전까지 구제역으로 살처분된 수백만 마리의 가축들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함부로 할 수가 없어요, 동물을… 더 잘해줘야돼. 말 못하는 짐승이잖아, 변명도 못하잖아. 외할머니에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말이, 못하는 짐승은 함부로 하면 안된다는 거였어. 옛날 분들은 오늘날의 우리들보다 훨씬 더 인간적이었던 것 같아.”
그는 이번 전시를 오픈하면서 살처분된 돼지들을 위한 진혼제를 제안하기도 했다. 2008년 <사람과 사람 없이>전시 시작 때 버려진 동물들을 위한 제사, 2010년 여성사 박물관에서 ‘블루 룸’ 작품을 철수하며 했던 ‘바리데기’를 위한 의식도 같은 맥락에서 비롯됐다. 다친 영혼들을 위로하면서 사람들은 마음의 위안을 얻을 수 있다. 그래서 그의 진혼제는 순전히 “인간을 위한 것”이다.
그림을 그린 나무에 깃든 영혼에 제를 지낸다는 개념이 우리나라 무속신앙과 맞닿아 있느냐는 물음에 “특정 종교나 샤머니즘을 신봉한다기보다 우리나라 사람은 누구나 내 나이 되면 다 자연스레 그런 사상이 마음 속 어딘가에 자리잡는다고 생각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고희를 넘긴 윤석남 작가가 레지던시 안에서 활발한 작업으로 맏언니 역할을 톡톡히 하지 않을까 예상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조금 의외였다. “1년 동안 책도 읽고 드로잉도 하면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싶다. 인천과 관련해 어떤 작업을 할 수 있을지도 생각해 보고 싶다. 차분하게 다른 작가와의 콜라보레이션은 염두에 두고 있지 않다”고 그는 대답했다.
휴식을 취하겠다고 말하긴 했지만 윤석남 작가는 사람들과 계속 소통해나갈 것이다. 전시 오프닝에 참석한 애견동호회 ‘강사모’ 회원 김진경 씨에 따르면 윤석남 작가는 오는 4월 중에 강사모 회원들고 그들의 강아지들을 전시장으로 초대했다. 일반 전시장에는 개 출입이 금지돼 있다는 점을 생각할 때 특별한 이벤트다. 강아지들은 목석들과 조우해 어떤 표정을 지을까. 강아지들에게는 ‘애견’이 아닌 ‘반려견’이라는 시각이 절실하다.
인천아트플랫폼은 근대 개항장 일대의 오래된 창고들을 리모델링해 2009년 개관한 복합문화예술 매개공간이다. 지난 2월 ‘2011 레지던시 프로그램 2기 입주작가’ 28명을 선정해 입주 작가들의 첫 전시를 하고 있다. 인천아트플랫폼 2기 입주작가 전시 <2011 인천상륙작전>은 3월 12일부터 5월 29일까지 약 80일 동안 이어진다.
인천에 자리잡은 윤석남 작가의 휴식은 축제 전야와 같은 고요한 기대를 선사한다. 그 휴식 이후에 또 무언가 예상치 못한 작품을 빚어낼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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