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란, ‘유기견진혼제 펼치는 윤석남 “때론 개들이 더 깊게 느껴져요” ’, 해럴드경제, 2009.2.3

‘유기견진혼제 펼치는 윤석남 “때론 개들이 더 깊게 느껴져요”

이제는 못 쓰게 된 빨래판이며 낡은 판자들을 이리저리 조합하고 색을 입혀 이 땅의 어머니를 형상화했던 작가 윤석남(70)이 전혀 달라진 작품으로 서울 소격동 학고재 화랑에서 4일부터 작품전을 갖습니다. 윤석남은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의 대표적 페미니스트 미술가입니다. 그는 자신이 ‘페미니즘 작가’로 불리는 것을 별반 개의치 않습니다. 또 스스로도 “페미니스트 작가로 생을 마감하고 싶다”고 되뇌곤 합니다. 이 땅의 어머니와 여성을 올곧게 표현해왔기 때문이죠. 그런 그가 5년여 전부터 ‘나무 개’ 작업에 몰두해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 윤석남이 나무 개 작품을 선보이는 것은 사실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지난해 대학로 아르코미술관에서 ‘윤석남-1,025:사람과 사람 없이’를 연바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108마리 ‘나무-개’들이라는 타이틀로 두번째 나무 개 작품전을 갖습니다. 지난해 아르코 전시가 변덕스런 사람들 때문에 마치 쓰레기처럼 버려졌던 유기견들의 함성에 귀기울인 전시였다면, 이번 전시는 유기견들의 영혼을 달리는 진혼제라 할 수 있습니다. 개들에게 예쁜 자개로 날개와 솟대, 꽃을 달아주고, 촛불을 후광처럼 일렁이게 한 것이 이를 말해줍니다.

원래 윤석남은 여성의 사회적 지위에 대한 자각과 여성 내면의 세계를 형상화한 평면및 설치작품으로 이름이 높습니다. 남편과 자식을 돌보느라 엿가락처럼 늘어진 어머니의 팔 조각, 핑크색의 럭셔리한 소파에 예리한 못들이 뾰족뾰족 솟아난 작품 등을 통해 여성들의 희생과, 그들이 살아온 부당한 삶을 표현해왔던 거죠. 그런 그가 2004년, 버려진 유기견들을 거둬 기르는 한 할머니와 만나고부터 확 달라졌습니다. 윤석남은 5년간 일체의 외부활동을 접은 채 1025마리의 나무-개를 조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여성을 다뤄왔던 작가가 난데 없이 웬 동물이냐고 고개를 젓는 이들이 많았지만 작가는 버려진 개들을 보듬어 안고 사는 이애신 할머니를 만났을 때의 놀라움과 깨달음을 사람들이 모두 함께 느끼길 갈망하며 나무 개를 만드는 작업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러나 처음엔 너무나 막막했습니다. “사실 얼마나 헤맸겠어요. 나무를 잘라서 개의 느낌이 나게 한다는 게. 그런데, 참 신기한 게 한참을 칠하고 갈고, 또 칠하다보면 개의 피부감이 느껴지며 대화가 되는 거예요. 마지막에 눈동자를 탁 찍으면, 이 개가 나를 향해 확 달려와요. 그러면서 개라는 것이 굉장히 젠틀하고, 사람보다 깊다는 느낌까지 들어요”. 이어 “나는 이번 작품을 통해 단순히 버려진 개를 보여주려는 건 아니에요. 유기견들을 통해 현대문명이 만들어준 인간의 모습, 그 유형의 모순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삶이 너무 나 중심으로 리얼해지는 거, 내면 깊숙이까지 참, 천박하다고나 할까? 오로지 나만의 이익에 너나없이 천착하는 것을 말이죠”라고 덧붙입니다.

만주에서 태어난 윤석남은 원래 성균관대에서 영문학을 수학했습니다. 결혼 후 어려운 살림 때문에 미대 진학은 꿈도 못 꾸다 마흔 나이에 독학으로 그림을 시작했더랬죠. 그리곤 1982년 첫 개인전을 호평 속에 마쳤고, 1983년 홀연히 뉴욕 유학길에 오릅니다. 늦깎이 전업주부 작가를 바라보는 시선은 냉랭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여성의 억눌리고 부당한 삶을 독자적 조형언어로 표현해왔습니다. 그리곤 오늘, 천마리가 넘는 나무-개들과 함께 나타난 그의 모습은 서사적 넓이와 철학적 깊이를 온전히 보여줍니다. 예술을 하는 사람으로서 윤석남이 지닌 자기 믿음과 직관이 새로운 세계관과 기호학으로서의 페미니즘 내지는 휴머니즘과 공명하는 방식은 참으로 경이롭습니다. 그리고 종국에는 ‘뜨거운 그 무엇’과 맞딱드리게 합니다. 윤석남의 작품에 대해 김홍남 이화여대 미술사학과 교수(전 국립중앙박물관 관장)는 “이 세상의 생명체 중 유독히 개는 인간의 오랜 친구로, 생각도 많고 마음씀씀이가 깊다. 그들의 생노병사를 지켜보면서 이 우주가 인간만의 것이 아니고 이놈이 나의 전신, 내 부모의 후신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며, 다시한번 윤회(samsara)에 대한 회의를 걷어버리게 된다. 윤석남의 작품 백팔번뇌는 인간을 넘어 동물, 나아가 모든 생명체를 나와 하나로 보는 그의 깨달음, 즉 정관(正觀)을 실천하고자 하는 구도의 한 행위라고 볼 수 있다”고 평했습니다. 학고재 본관과 신관을 크고 작은 나무 개들로 가득 채운 윤석남 전시는 2월24일까지 계속됩니다. 02)720-1524

기사원문보기: http://biz.heraldm.com/common/Detail.jsp?newsMLId=20090203000488

강민영, "페미니즘 작가 윤석남 ‘유기견 108전’… 버려진 개 위한 ‘108 진혼제’", 스포츠월드, 2009. 02.03
"작가 윤석남, '유기견'소재로 전시", MBC, 20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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