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남의 ‘손이 열이라도’, 경기일보 2012.7.3

[그림 읽어주는 남자]윤석남의 ‘손이 열이라도’

7월, 다시 새로운 반의 시작이다. 지나간 것들의 흔적은 과거에 묻힐 터, 새 날의 새 삶에 대한 생각들을 키울 때이다. 그 생각의 씨알들이 영글어 가는 시간이다. 목마름을 해갈하는 비가 온 대지에 내렸으니 더한 축복이 또 있을까?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이 있다. ‘남자의 반은 여자’라는 말도 있다. 앞의 말은 속담으로 삶의 지혜가 녹아있다. 시작이 어려우나 시작하면 끝마치기는 어렵지 않다는 뜻. 뒤의 말은 1985년 중국에서 발간된 소설이기도 하나, 그것보다는 가부장적 세계에 갇혔던 근대적 세계인식의 한 장면이기도 하다.

윤석남의 ‘손이 열이라도’

윤석남의 ‘손이 열이라도’는 1986년 페미니스트 모임이었던 ‘시월’의 기획전 ‘반에서 하나로’라는 전시에 출품된 작품이다. 한국 현대미술에서 여성주의 미술의 등장을 알렸던 이 전시는 미약하였으나 성대했다.

서른 후반과 사십 중반의 김인순, 김진숙, 윤석남이 모여서 결성한 시월의 전시는 여성 미술인들이 스스로를 자각하고 당당히 예술가 주체로 나서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한 어머니가 있다. 한 손에는 물통을 들고, 또 한 손에는 주걱을, 아이 둘을, 가계부를, 과일 광주리를 들고 이었다. 물 긷고 밥 짓는 것에서 양육과 식생의 거의 모든 노동을 감수해야 했던 어머니가 있다. 아름다웠던 처녀의 몸은 그렇게 어머니의 몸으로 바뀌어 가고 어느 순간, 손이 열이라도 부족한 천수관음(千手觀音)의 몸이 된다. 어머니는 대자대비의 영광을 받을지 모르나 그 힘듦이 가없다. 어머니가 흘리는 눈물 한 방울이 그 가없음의 상징일 것이다.

여자는 남자의 반이 아니다. 하나다. 남자도 하나요, 여자도 하나다. 아담의 몸에서 이브가 창조되었을지 모르나 그것은 종교적 신화일 따름이다. 한 해의 반이 완성되었다. 미완일지라도 지나간 것에 연연해하지 말자. 나머지를 기획하고 실천하는 것이 삶의 전체인 ‘하나’를 완성하는 또 다른 시작이다.

김종길 미술평론가·경기도미술관 교육팀장

기사원문보기: http://www.kyeonggi.com/news/articleView.html?idxno=589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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