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엄마, 나, 딸… 우리를 위한 그림책
ㆍ다정해서 다정한 다정씨
ㆍ윤석남·한성옥 지음 | 사계절 | 64쪽 | 1만8000원

책 만든 사람의 정성이 느껴지는, 잔잔한 그림책이다. 만든 이는 다름 아닌 미술가 윤석남(77)과 그림책 작가인 한성옥(59). 윤석남은 나이 마흔에 화가의 길에 들어선 이래 여성의 삶, 특히 모성을 천착한 한국 여성주의미술의 선구자다. 미국에서 작업을 하며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한성옥은 귀국 후 국내에서 활발한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다정해서 다정한 다정씨>는 윤석남이 그림과 글을, 한성옥이 아트 디렉팅을 맡아 서로 교감하며 ‘빚어낸’, 어른을 위한 그림책이다. 윤 작가가 2000년대 초반 일기 쓰듯 매일 그린 드로잉 300여점 중 30여점, 당시 써놓은 시적인 단상들을 고르고 골랐다.
“스물일곱에 결혼해서 아이 낳고 살다가 /마흔 들어 내 방을 갖게 되었어요.” 책은 윤 작가의 내밀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내가 나를 너무 꽉 채우고 있어”서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던”, 그래서 스스로 “우물 찾아 30000번 비인 두레박을 드리운다면 /혹시 우물이 내게로 오나?”라고 자문하던 시절이다. 책장을 넘겨 갈수록 이야기는 확장된다.
“너 안에 나 /나 안에 네가 있음에 /살아 있어 너를 보는 것이 /행복하구나, 아이야.” 딸이다. “내 나이 스물일곱일 때 /나는 사랑과 일 사이에서 당연하다는 듯이 /사랑을 선택했다 /이제 우리 아이가 스물일곱이 되었는데 /일에만 파묻혀서 결혼은 차차 하겠다고 한다 /내가 어마나 좋아라고 두 손 번쩍 들어 환영하니 /이러한 나를 아이가 오히려 이상하게 쳐다본다 /왜 그러는 거지?”

내 어머니는 “난데없이 눈물 한 방울 투투둑” 하는 존재다. “가볍다 /너무 가벼워서 /깃털보다 가벼워서 /답삭 안아 올렸더니 /난데없이 눈물 한 방울 투투둑 /그걸 보신 우리 엄마 /‘얘야, 에미야, 우지 마라 그 많던 걱정 근심 다 내려놔서 그렇니라’ 하신다 /아, 어머니.” 더 나아가 “마술사가 되려다 실패한 아줌마” “남부터미널에서 만난 할머니”같이 “모두가 다 예쁜 당신들”로 이야기는 이어진다.
진솔함이 드러나는 글이 드로잉과 만나 어우러졌다. 색연필의 수채화 같은 색감과 질감, 가느다란 연필 선의 드로잉이 눈길을 자꾸 잡고, 글을 또다시 되새김질하게 한다. 바로 어른을 위한 그림책이다. 다정해서 다정한 그 다정씨는 누구일까. 엄마다. 한없이 여리면서도 강인한 여성이고, 또 모성이다. “예쁘고 아름다워라 /세상에 고마워라 /아득하니 슬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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