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타는 토템들의 힘찬 눈물 – 김혜순

애타는 토템들의 힘찬 눈물

대담: 김혜순 | 시인, 서울예대 교수 

김혜순     ‘나무’라는 소재만큼 예술가들을 사로잡은 소재도 드물 것 같다. 나무는 살아 있을 때는 스스로 움직일 수 없다. 나무는 죽어 목재가 된 뒤에야 가구도 되고, 칠성판도 되고, 빨래판도 되고, 땔나무도 되어 비로소 다른 용도로서 움직임을 얻을 수 있다. 윤석남의 작품에선 죽은 나무가 여성의 몸이 되었다. 작업할 때 나무에게 무슨 말을 하는가. 어떤 나무를 고르는가. 나무로 작업하게 된 동기가 있었는가.

윤석남     사실 아주 구체적인 동기가 있었다. 90년대 초 강릉의 허난설헌 생가에 갔었는데, 감나무 밭에 감나무가 많았다. 거기서 떨어진 가지 하나를 주워 와서 그 나뭇가지에 허난설헌을 새겼다. 나무를 손질하면서 마치 여성의 피부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나무는 딱딱하니까 어찌 보면 여성적인 소재는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 떨어진 감나무 가지를 만졌을 때의 느낌은 여성의 피부를 만지는 것 같았고, 아주 따뜻했다. 그 다음부터 나무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목재상에 가보니 버려진 나무들이 아주 많았다. 목수들은 나무의 둥근 면들은 잘라버리고 네모진 것만 쓴다. 버려진 그 둥근 나무들, 화목으로 쓰일 것들을 사 와서 작품에 썼다. 나무의 결이 부드럽고 쭈글쭈글했다. 늙은 여자의 피부 같았다. 표면에 손을 대지 않고 그대로 두고 얼굴을 그리면 여자가 되었다. 얼굴을 그리면서는 대화를 나눈다. 눈을 그리고 나면 나무가 스스로 여성이 되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나무라는 재료는 위험한 소재다. 수천 년 동안 인간이 사용해온 소재고 재료이기 때문에 진부하고 보수적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무를 쓸 수밖에 없었다. 나무에 번지는 물결무늬, 주름살 진 피부. 그것을 만지고 나서 그것으로 작업을 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그만큼 나무는 나에게 매력적인 재료다. 

김혜순     딱딱하고, 차고, 진부하고, 보수적인 소재에서 물렁물렁하고, 따뜻하고, 쭈글쭈글한 피부를 발견했다는 얘기가 재미있다. 죽은 나무에서 물의 무늬, 물결의 무늬를 봤다는 말은 죽은 나무에서 생명을 봤다는 말로 들린다. 
평면 작업에서 나무 작업, 설치 작업으로 옮겨간 것을 단순히 재료가 변한 것이라고만은 볼 수 없을 것 같다. 그것은 세계관의 변화라고까지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평면에서의 재현보다 설치에서의 재현은 화가 자신의 힘, 운동성과 함께 재료의 질감에 전적으로 의존하게 된다. 평면 작업을 할 때의 윤석남은 큰 주머니를 주렁주렁 찬 것 같은 둥글고 푹신푹신하며 질긴 어머니들의 융숭한 힘을 동심원적으로 폭발시켰다. 나는 그 그림들을 보았을 때, 우리의 어머니들이 몸속에서 끓어오르는 눈물을 참으면서 무거운 다라이를 이고 무언가를 팔러 다니던 나날, 그날들의 ‘힘찬 서러움’을 읽었었다. 그 후 그 어머니들을 향한 반복적인 제사, 그로테스크함과 뾰족함, 그리고 뼈가 시린 분노와 차가운 눈물이 느껴지는 회화와 설치, 강물처럼 흘러가는 수많은 여자들과의 조우, 그리고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의 평면 작업의 둥근 설움과 다시 조우하는 나무 형상들, 여성들의 힘찬 설움의 폭발을 다시 보았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세련되고, 아름답고, 귀기(鬼氣) 어리고, 에로틱한 여성 형상, 윤석남식의 여성 미학의 탄생을 목격하게 되었다. 이렇게 평생 작업을 해나가는 동안 질료와 형상들 그리고 표정들과 신체가 변화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되는가. 

윤석남     처음의 유화, 평면 작품 시절에 나타나는 여성들의 모습은 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성들이었다. 나는 재래식 시장을 가는 것을 좋아한다. 와글와글 생동감 넘치는, 거친, 정제되지 않은 목소리들, 웃음소리, 악쓰는 소리를 좋아한다. 그런 어머니들에게서 느끼는 것은 단순한 슬픔이 아니라 강인함이다. 그 모습들이 평면 시절의 그림들이 되었다. 한 10년쯤 그것을 그렸다. 그러나 평면이 갖고 있는 답답함이 있었다. 더 드라마틱한 이야기, 피부에 와닿는 이야기,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평면은 그것을 해결해주지 않았다. 벽에서 튀어나오고 싶었다. 
90년대 초에 미국에 갔을 때, 내가 어떻게 평면에서 튀어나와 사람들과 직접 대화하고 나에게 개입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설치를 찾게 되었다. 내 작업에 설치라는 이름이 붙여지기 이전부터, 더 직접적으로 소통하고 싶은 소망이 먼저 있었다고 말해야겠다. 설치 작업은 굉장히 연극적인 요소가 크다. 그것이 말할 수 없이 재미있다. 앞으로 다시 평면으로 돌아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설치가 주는 연극적인 효과, 더 강렬한 느낌에 사로잡혀 있다. 
나는 일상에서 쓰는 물건들을 가져다 작품에 쓸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내 작품 안에는 일상의 이야기들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의자가 그렇다. 여자들이 주로 거주하는 공간은 식탁이 놓인 부엌인데, 식탁의 의자가 여성들의 것인가. 분명 부엌에서 여성들이 서성거림에도 불구하고 사실 그녀들은 그곳에 부재한다. 의자 작품들은 이렇게 부재하고 불안한 여성의 자리를 얘기하고 싶어서 만들어졌던 것 같다. 처음엔 어머니부터 시작했다. 사실 어머니를 얘기하지 않았으면 내 얘기를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매체의 변화가 아니라, 통과의례를 거치는 것처럼 어머니 얘기를 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김혜순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이야기를 하기 위해선 설치로 건너가는 의례가 필요 불가결했다는 말로 들린다. 설치 작가, 조각가는 이 시대를 향해, 이 세상을 향해 자신의 토템을 세우는 사람들이다. 〈빛의 파종〉전에서는 천 개의 탑이 되기를 거부한 것 같은, 그래서 그냥 흘러가기를 선택한 것 같은, 그려지기보다는 지워지는 여자들 999명을 세웠다. 1996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 특별전(〈호랑이 꼬리〉)출품작인 〈어머니의 이야기〉에나 〈떠도는 영혼을 위한 기도〉에는 작품 앞에 수많은 촛불을 켰다.
어떤 간절한 바람이 있어 윤석남은 이 세상을 향해 이러한 형상과 질료의 여자들, 애타는 토템을 세우는 것인가. 그리고 그 앞에 촛불을 켜는가. 또 어떤 간절한 바람이 있어 작품 속 여성들의 신체를 이렇게 엿가락처럼 잡아당겨놓는가. 시스터 후드와도 관련이 있고, 여성의 슬픔 혹은 염원과도 관계가 있는 것 같다. 나는 윤석남의 설치를 볼 때마다 지방(紙榜) 대신에 나무로 화한 여성의 몸을 올려놓은 제사상을 보는 것 같았었다. 그러나 이즈음에 오면 그 토템들이 점점 목숨을 가진 것들로 살아난다. 제사상에 올리기에는 좀 더 경쾌하고 동적이다. 작품이 나날이 젊어진다. 이 세상을 향해 윤석남이 세운 혹은 세우고자 하는 토템은 무엇이었던가.

윤석남     백 개의 촛불을 세운 베니스 비엔날레 특별전의 〈어머니의 이야기〉에서 ‘촛불’은 일상적인 공간에 켜지는 촛불의 의미보다는 제상(祭床)의 촛불이 가질 수 있는 의미가 있다. 촛불을 켤 때 우리는 제일 떨린다. 엄숙해진다. 숨이 멈춰지기까지 한다. 바로 그러한 엄숙함과 경건함, 숨을 참을 정도의 사랑과 연민, 그것을 되살리고 싶은 희원이 담겨 있었다. 불빛 자체도 좋았지만 말이다. 우리는 지금 내 어머니 같은 삶을 살고 있지는 않다. 김혜순의 책 《여성이 글을 쓴다는 것》에 나타나 있는 것처럼, 어머니는 흘러가는 존재, 비어 있는 존재다. 그런 존재를 알고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무언가 아쉽다. 어머니들의 마모되는 삶에 대한 간절한 슬픔이 나에게는 있다. 그 전시회 끝나고 다시는 촛불을 쓰지 않는데, 아마 그때 다 풀린 거 같다.
요새 작품들의 신체가 늘어나는 것은 나의 바람의 표현이라 해도 되겠다. 나는 정말이지 어깨동무하는 것처럼 신체가 길게 늘어나서 누군가에게 닿고 싶다. 그러나 삶 속에선 같은 여성들끼리도 잘 닿아지지 않는다. 그건 인간이 갖고 있는 본래적인 외로움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특히 여성들은 서로 닿고 싶고, 닿아서 뭔가를 이루고 싶은데 이룰 수 없는 것들이 많다. 특히 가정에서 일하는 여성들에겐 말할 수 없는 욕망들이 숨어 있기만 하지 않는가.

김혜순     어머니들이 갖는 간절한 슬픔 앞에 제상을 차리고 싶은 열망, 여성들끼리의 소통에의 열망이 신체를 길게 늘어나게 한 것인가 보다. 작가에겐 실례가 되겠지만, 설치 작품들의 모습을 어머니란 코드로만 단순하게 축약해 바라보자. 윤석남은 처음엔 어머니를 이콘화하려는 작업을 했다. 이어서 어머니가 사라져버린 방들의 끔찍한 악몽을 거쳐, 어머니가 된 작가의 생명과 움직임이 느껴지는 궤적을 그렸다. 지금의 작품을 보면 어머니가 된 작가가 악몽의 빈 방, 그 의자에 가 앉아 또 다른 어머니를 바라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마치 어머니라는 죽음에서 어머니라는 삶을 끄집어낸 것 같다. 다른 방식으로 얘기하자면 통시적으로 존재했던 어머니들의 모습에서 공시성의 어머니, 작가 주변의 어머니, 혹은 자신의 어머니성을 끄집어낸 것 같다. 이제 다른 여성들의 아픔을 살기 시작하려는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아픔을 드러내는 것인가.

윤석남     어머니 시리즈가 끝나면서 〈핑크 룸〉을 준비했다. 어머니 작업을 끝낸 것 같았다. 마치 긴 굿을 치른 것 같았다. 그러자 이제 내 얘기를 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긴 것 같았다. 〈핑크 룸〉은 내 얘기다. 내 주변의 어머니들 얘기라 해도 되겠다. ‘나’의 자리, 어머니의 자리를 보여주고 싶었다. 사실 나는 내 방을 가진 지가 얼마 안 된다. 내 삶의 자리를 얘기하다보니 자연히 〈핑크 룸〉을 얘기하게 되었다. 내가 〈핑크 룸〉에서 선보인 의자들은 서양 의자다. 한국 의자가 아니다. 서양 의자에 한국 옷을 입혀보았다. 아주 어색한 두 문화의 만남, 이는 마치 부엌에도 방에도 있지 못하는 불안한 여성들의 자리를 대변해주는 것 같다. 서양 것도 아닌 한국 것도 아닌, 굉장히 천박한 모습이 바로 우리, 나의 모습인 것 같기도 했다.

김혜순     90년대 초중반 즈음이 작품으로 가장 격렬한 시기가 아니었던가 생각된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의 시 세계와 윤석남의 그림 세계가 같은 궤적을 그린다는 느낌이 든다. 어쩌면 여성성에 들린 자는 반드시 그로테스크라는 고행의 강을 건너야 하는가보다는 생각마저 든다. 어떻게 그 격렬한 세계를 넘어가서 지금의 그 자리에 이르렀는지 궁금하다. 잠을 자는지, 꿈을 꾸는지, 꿈속의 ‘그’인지 모를 인물은 까맣게 칠해져 까치발로 서 있고, 핑크 소파 위에서는 쇠갈고리들이 밤마다 무럭무럭 자라고 있고, 의자의 네 발은 쇠갈고리들을 단 채 밤마다 삐걱거리며 마루를 걸어 다니는 악몽, 방바닥에서는 깨어진 구슬들이 참상 위를 붉은피톨처럼 굴러다니는 악몽의 현장, 그 미쳐버린 여성의 히스테리컬한 꿈, 내면적 전쟁의 참상을 어찌 건널 수 있었는가. 혹시 폭발적인 양으로 그려지고 있는 드로잉의 슬픔과 아늑함이 알게 모르게 도와준 것은 아닌가.

윤석남     〈핑크 룸〉의 그 깨어진 빨간 핑크 구슬 위에는 사람이 서 있을 수 없다. 구슬을 디뎌보라, 그 사람은 곧 넘어진다. 방 하나 가득 구슬을 깔아놓았는데, 어떤 관람객이 들어가려다가 넘어졌다. 그래서 작품 앞에 줄을 쳤었다. 매일 악몽처럼 어디를 가야 하는데 가지 못하는 꿈을 꾸었다. 하루도 안 꾼 날이 없다. 그런 꿈들을 불안한 형광 핑크로 표현해보고 싶었다. 형광 핑크색은 사람을 미치게 한다. 그렇게 한 2년을 하니까 지겨워졌다. 너무 자기 자신을 뭉개고 들어가는 것 같아서 나 자신 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작업실도 옮기고, 그때부터 3년간 드로잉만 했다. 그렇게 해서 또 치유가 된 것 같다. 아주 작은 드로잉들이었는데 말이다.

김혜순     여성의 노동은 하찮다. 밥하고, 빨래하고, 아이 낳고, 기르는 노동은 일견 이 사회와 동떨어져 보인다. 이 소모적이고 부차적인 노동 속에서 발견한 것, 그 손놀림 속에서 발견한 것이 아무래도 윤석남의 작품들인 것 같다. 〈어머니, 가족을 위하여〉에서는 작품에 빨래판을 갖다가 붙였다. 그 이후에도 쓰레기통 주변에 버려진 가구들, 가구에서 뜯은 자개들, 포장 목재들을 주워다가 여성들의 신체를 구성하는, 혹은 감금하는 나무로 썼다. 그 감금의 목재들, 그 닫힌 창틀 속에서 여성의 얼굴이 아크릴 물감으로 번져 나오게 하는 이유는 무엇이었는가. 도무지 자신의 작품을 귀족적인, 고상한 곳에 놓아보려는 의지가 없지 않은가.

윤석남     재료에 관한 질문에 먼저 대답해보겠다. 아까도 얘기했었지만, 이전에 작업실이 아파트 지하실에 있었다. 아파트 주변엔 버려진 가구들이 많다. 그 버려진 가구들을 보면 안타까웠다. 버려진 것들에서 간혹 반짝거리는 것들을 주웠다. 그것을 주워다가 내 작품에 집어넣어서 빛을 주고 싶었다. 버려진 창틀을 주워 와서 깨어진 유리들을 붙여보았다. 그런 작업을 통해 폐쇄된 공간에 갇힌 여성들을 표현해보고 싶었다. 의자 등받이에 여성들의 얼굴을 끼워 넣기도 했는데, 그럴 땐 아마 닫힌 공간에서 떨어져나가고 싶은 욕망을 반대로 표현해보고 싶었던 것 같다. 나는 미술로서 고상해진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사실 삶은 천박하지, 고상하지 않다. 나는 내 작업으로 고상하다는 아우라를 깨고 싶었다. 오히려 비천한 것들을 그대로 갖다 써서 현재 우리 인간들의 삶을 보여주고 싶었다.

김혜순     딸과 함께 길을 가다가 버려진 의자나 가구를 발견하면 우리는 늘 “윤석남에게 갖다 주자”고 대화를 나누었었다. 버려진 것들을 가지고 여성적인 삶을 표현하는 것, 여성성의 구현에 가장 적합한 방식인 것 같다.

윤석남     버려진 드럼통도 주워다가 쓰니까 너무 예쁘다.  

김혜순     드럼통 같은 여자를 예뻐하고, 윤석남식으로 예쁘게 만들어 보여주는 것이 윤석남식의 역설적 미학 아닌가. 윤석남 작품 속에는 없는 것, 할 수 없는 것이 많다. 먼저 작품 속에 성인 남성의 얼굴이 없다. 그나마 등장한 남성은 아들일 뿐……. 〈대권〉이란 작품에서는 남성은 얼굴이 없다. 남성은 퓨즈가 나갔다. 〈꽃신〉의 신발들은 신을 수 없다. 발이 들어가야 할 자리를 파내지 않고 볼록하게 흰 칠을 하였다. 아니면 꽃신은 상자에 그려져 붙어 있다. 비단 핑크 의자는 앉을 수 없다. 의자의 발에도, 의자의 쿠션에도 대못 갈고리들이 꽂혀 있다. 의자는 여성의 몸을 은유한다. 의자가 된 여성에게 쇠못을 박아놓는 것은 자학인가, 그로테스크인가, 움직이고 싶은 욕망에 대한 역설적 항의인가.

윤석남     꽃신을 못 신게 만든 것은 이유가 있다. 사실 과거 대부분의 여자들은 꽃신을 신지 못했다. 꽃신은 바라만 보아야 하는 환상이고, 희구하기만 해야 하는 대상이었다. 그래서 내가 나서서 꽃신을 만들었다. 나이가 들어서 죽을 때는 어렸을 때 희구했던 꽃 주머니, 꽃신을 희구한다고 하는데, 바로 그런 의미도 있었지 않았나 싶다. 신어보지 못한 것의 고귀함, 화려함을 말하고 싶었다. 내 의자 작품들의 갈고리는 유기적이다. 움직인다. 갈고리들은 움직이면서 밖으로 나오게 되어 있다. 언뜻 보면 앉을 수 없는 의자라는 생각이 들겠지만, 자세히 보면 이 갈고리들이 뱀처럼 움직인다. 그것은 나도 모르게 솟아오르는 욕망이 의자에서 튀어나오는 갈고리 모습을 닮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모습들이 이번 전시의 자연스럽게 몸이 늘어나는 것들과 연결되지 않나 싶기도 하다. 의자 작품엔 여성의 몸에 대한 가학적인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다. 쇠갈고리는 가학적인 면도 있지만, 움직이면서 무엇을 향해서 가려고 하는 힘, 내재적인 욕망에 대한 표현이다. 오히려 후자 쪽이 더 가깝지 않나 싶다.

김혜순     작품 속의 여자들은 촌스럽고 투박하며 못생겼다. 심지어 지워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평평한 여성들의 얼굴이 급진적 여성주의라는 관념을 작품 속으로 용해시킨다. 아울러 타자로서의 여성의 대상성을 거부한다. 준엄하고 죽음이 깃든 대패질하지 않은 얼굴이 여성이라는 타자성과 여성주의라는 목적성을 체화한다. 작품을 하고 있을 때 페미니즘은 관념이었는가, 몸이었는가, 몸이 알고 있는 것을 형상화하고 재확인하는 담론이었는가. 몸과 손과 사유를 구별할 수조차 없게 하는 세계관이었는가.

윤석남     이 질문에 대답하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 페미니즘이라는 말에 대해서 갖고 있는 어색함에 대해서다. 내가 그림을 처음 시작할 때는 페미니즘이라는 말이 없었다. 1979년도에 그림을 시작했는데, 처음에 그린 것이 우리 엄마고, 시장의 어머니들이었다. 그리면서 마음이 편안했다. 내가 관심이 있는 것은 왜 저 여자들은 극성스럽게 살아야 했는가, 왜 나는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것이었다. 처음부터 나는 그림이라는 것, 미술이라는 것이 갖고 있는 왜소함, 약함을 알면서도 왜 나는 이것을 하고 있는가라고 자주 생각했다. 그러나 여성들, 어머니들을 그리면서 내가 내 병으로부터 나오는 느낌이 있었다. 당시엔 페미니즘이라는 말이 없었어도, 내 외침을 어머니에 비유해서, 또는 여자들의 형상에 비유해서 그렸던 것 같다. 사실 내가 본 여자들은 다 못생겼다. 사실 예쁘다 밉다는 생각도 없었다. 나중에 나 스스로 화장에 대한 새로운 의미부여도 해보았지만, 사실 나에게 페미니즘과 연관해서 예쁘다 밉다는 생각을 할 겨를조차 없었다. 나에겐 이 땅에 여성으로 태어났고 여성으로 살 수밖에 없는 현실이 바로 페미니즘을 불러온 것 같다. 페미니즘이라는 말을 붙이지 않아도 그럴 것이다. 윤석남(동생이 아들이길 바라서 지어진 이름)이라는 내 이름도 그렇고, 아무튼 나에겐 어렸을 때부터 여성스럽다는 것이 일종의 콤플렉스였다. 나는 어려서부터 나무도 잘 탔다. 남자 아이들처럼 놀았다. 남자들과의 대결의식이 어려서부터 들어 있었다. 억눌리고 소외받고 했던 사람이 더욱 폭넓은 이해와 사랑이 있다고 믿는다. 소외받은 사람이 더욱 넓은 사랑을 베풀 수 있다고 믿는다. 30대 초반에 내가 정신적인 문제가 생겨서 치유할 길이 없었는데, 그림을 그리면서 폭발하는 광기에 가까운 상태가 가라앉아갔다. 나는 그것을 김혜순의 《여성이 글을 쓴다는 것》에 나오는 ‘들림’에 가까운 상태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때 들렸었다. 정신적인 방황, 자기를 지워버리고 싶은 욕망의 과정에서 겪었던 고통이 무당 굿하듯이 그림으로 나오면서 자연스럽게 한꺼번에 말하고 싶은 욕망으로 나타나지 않았나 싶다. 이것이 나의 페미니즘이다. 

김혜순     소파에 두른 야광의 텍스타일, 길게 늘어난 손길에 걸쳐진 모조 보석들, 꿈의 공간에 뿌려진 얼음조각처럼 날카로운 구슬들, 어깨에 걸친 칠기 문양 같은 키치이면서도 정취 어린 문양들을 배치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나는 그런 것을 들여다볼 때마다 우리 엄마들의 그리운 패션을 만나는 것 같기도 하고, 엄마들이 와글와글 수다 떠는 안방 장지문을 열었을 때의 그 올망졸망한 방 안의 잡동사니들을 본 듯도 하다. 무표정하고 강인한 여성들의 얼굴, 몸의 자태와 사방 연속의 꽃 문양은 대조된다. 핑크 비단으로 뒤덮인 바로크 스타일의 소파에 대못을 팡팡 꽂아놓은 모습처럼 말이다. 그런 이질적인 것들의 부조화에서 무엇을 읽길 바라는가. 아니면 여성으로서의 삶을 그렇게 이중적으로 파악한 것인가.

윤석남     굉장히 개인적인 얘기를 해야 될 것 같다. 어렸을 적에 추석날이나 설날만 되면 예쁜 옷, 금박 문양이 있는 옷을 입었지만 하루만 지나면 그 옷을 다시 벗어야 했다. 여자 남자를 떠나서, 예쁜 분홍색 치마에 금박 무늬는 365일 중에 이틀뿐이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렵고 투박하게 살아도 내재하는 아름다움에 대한 희구는 있지 않았나 싶다. 그런 아기자기한 욕망. 그런 욕망이 내게는 문양으로 튀어나오는 것 같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어머니들이 옹기종기 마루에 나와서, 문밖에 나와서 수다를 떨고 있었는데, 잘은 모르지만 그 내용이 상당히 외설적이지 않았나 싶다. 그것으로 무언가를 해소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여성들의 문양에 대한 희구와 소망을 결부시키고 싶었다. 꽃무늬는 그때의 희구를 생각나게 한다. 

김혜순     이번 전시의 여성들은 사지를 길게 늘이거나 얼굴이 겹쳐져 쌓여 있다. 〈빛의 파종〉전의 999명의 여성들은 한 몸이면서 999개의 몸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응축으로 한 여성이 되었고, 확장으로 999개의 여성의 몸이 되었다. 그리고 어둠 속에 숨어 떠는 한 개의 감춰진 몸이 되었다. 혹은 천 개가 모여야만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천 개가 모이지 않으면 하나의 온전함이 되지 못한다는 그 관념 자체를 골방에 가둔, 999개로 흩어진 몸이 되었다. 그들은 999명이면서 하나로 흘러가는 눈물의 물길처럼 보였다. 그 강에 발을 담그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물에 지워진 듯 온전한 몸을 가진 여자들은 거의 없었다. 그 전시가 끝난 후 그 작은 여성들은 천지사방 사람들의 손으로 흩어져 갔다고 들었다. 정말 파종이었던가보다.
여성은 남성과 달리 타자와의 관계를 목숨처럼 여긴다. 왜 요즈음에 와서 작품 속 여자들은 여럿이 되거나, 아니면 자신의 신체를 길게 늘여보려고 하는가. 왜 움직임이 생기고, 움직임의 반경이 넓어지는가. 여성의 몸의 확장의 의미는 무엇인가. 팔이 늘어난 여자들은 간혹 옆의 사람과 눈길을 빗겨 마주보고 있는데 그 마주선 사람 또한 여성이 아닌가. 그들은 누구 혹은 무엇을 향해 팔을 늘이고 있는가. 

윤석남     핑크 룸 이후에 드로잉을 하면서 작품의 몸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늘어난다는 것은 확장의 의미도 있고, 끄집어내려는 의미도 있다. 〈종소리〉라는 작품은 이매창에 관한 것이고, 〈연〉은 허난설헌에 관한 작품이다. 나무 작업 할 때의 팔이 늘어나는 것과 드로잉 작품의 팔이 늘어나는 것은 조금 의미 차이가 있다. 2백 년 전에 살았던 사람들에 대해 잘은 모른다. 화순의 이매창 묘를 찾아갔었는데, 가묘지만 그 묘가 상징하는 느낌이 나에게 너무 강렬했다. 그래서 이매창 연구소에 가서 책도 받아오고 그랬다. 그러면서 가슴이 참 아팠다. 그때의 그 여성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그 질문과 대답을 팔을 길게 늘여 끄집어내고 싶었다. 난 사실 모른다. 그 여자들에 대해서. 편린만을 가지고 상상하지만, 그러나 그것이 육화되는 느낌이다. 그들의 혼이 내 안에 들어왔다고 가정을 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것을 끄집어내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드로잉할 때의 늘어남은 나를 다른 사람에게 닿게 하고 싶은 마음이다. 여성들과의 소통에 대한 갈구, 비록 시시한 얘기라고 하더라도 해보고 싶은 욕망의 표현이다. 또 한 가지, 몸이 늘어나는 것은 가두어지고 있는 현실에서 튀어나가서 뭔가를 하고 싶고 만들고 싶은 욕망이다. 그래서 몸이 늘어나지 않나 싶다. 그리고 〈마주보다〉는 호주의 시드니 비엔날레(2000)에서 발표한 작품인데, 허방에 앉아 있는 여자와 꿋꿋하게 서 있는 여자를 마주보게 했다. 서 있는 여자는 굉장히 힘이 있는데, 그 여자가 갈 길을 모르는 여자에게 기(氣)를, 힘을 주는 느낌이 있다. 내가 똑바로 눈을 뜨고 상대방을 쳐다보는 일을 잘 못 하는데, 이제는 눈을 똑바로 뜨고 얘기를 하고 싶다. 얼마 전까지도 내 작품들의 얼굴 반이 지워지고 그랬는데, 요새는 그 얼굴들이 생동하는 느낌이다. 이제는 좀 당당하게 하고 싶다. 

김혜순     이번 전시와 지난번 전시들과의 다른 점은 여성들의 몸에서 길이 흘러나오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몸에서 길이 나온다는 것은 닫힌 몸이 아니라 열린 몸이 된다는 것이다. 작품들을 둘러보니 간혹 손을 내밀고 관계를 맺고자 하는, 혹은 관계망을 형성한 여성들의 신체가 등장한다. 그 전의 윤석남의 작품 속에선 모든 인물들이 한 방향을 보고 있지 않았는가. 손은 자신의 몸에 얹고서. 장승이나 부처들처럼. 기념사진 속의 인물들처럼. 그러나 이제 작품 속의 여성은 그런 위치에서 내려와 실제 윤석남 주변의 인물들의 이름(심지어 김혜순도 있다. 손에는 몸의 내부에서 꺼낸 듯한 붉은 못투성이 심장을 꺼내 들고)을 갖고 있거나, 서로 눈길을 마주치려 하거나, 손길을 맞대고자 팔을 길게 늘이고 있지 않은가. 눈에서, 손에서 길이 흘러나오고 있지 않은가. 〈어시장 2〉도 그 연장선상에서 봐야 할 것 같다. 물고기들은 〈빛의 파종〉전의 작품 속 여자들처럼 하나이면서 여럿이다. 그들은 한 방향으로 한 몸처럼 움직여간다. 처음 설치를 시작했을 때, 나무에서 물결무늬를 바라보던 시선으로부터, 여성들의 신체를 거쳐, 물고기들까지 윤석남의 작품은 나무를 소재로 썼지만, 흐르는 것이 되어간다.

윤석남     〈어시장 2〉 등 이번 전시의 물고기들은 〈빛의 파종〉전과 관련된다. 물고기를 만들면서 〈빛의 파종〉을 많이 생각했다. 대담자가 그것을 지적하니 이상한 생각이 든다. 물고기들은 한 방향으로 헤엄쳐 간다. 여러 마리지만 전체로 한 마리가 가는 것 같다. 여성이 온전하게 한 개체로 완전하게 서 있으려면 2, 3백 년이 흘러야 할 것 같다는 예감이 종종 든다. 그때까지는 같이 가야 한다. 물고기들의 방향을 작품 속의 아줌마가 지시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만들기도 했다. 〈어시장 1〉은 여성이 머리에 큰 고래를 이고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 속의 여성은 당당함의 현현이다. 당당함이라는 끈을 잊어버리면 이제는 안 될 것 같다. 신체의 부분도 드러내고 주무르기도 하고, 그것이 두렵지만 그럴 수 있는 힘이 나에게는 있다고 생각하고 싶다. 그전까지는 없던 움직임이 작품 속에 생긴 것도 같은 이치다.

김혜순     이번 전시의 얼굴, 몸들은 점점 더 많은 육체성, 관능성을 보유한다. 더구나 어떤 주장보다는 내면을 밖으로 송출하려는 의지, 내부를 외부에 걸쳐보려는 의지가 강하게 표출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내부와 외부를 함께 보여주려는 의지는 어디서 연유하는가. 그리고 육체를 공중에 매달아 부유하게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끄집어내다’와 ‘흔들리다’ 그리고 ‘늘어나다’는 무슨 관련이 있는가. 공중에도 길을 내려는 것인가.

윤석남     처음에 드로잉을 한 것은 그네였다. 내 작품은 벽에 붙어 있거나 땅에 붙어 있거나 했는데, 좀 더 자유롭고 싶었다. 공중에 떠 있으면서 지상과 하늘을 연결하고, 늘어나고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흔들리기 때문에 불안한 요소는 있지만 그네가 가지고 있는 환상이 있다. 일종의 카타르시스도 있다. 하늘을 가로지르는 그네의 느낌이 굉장히 그리웠던 것 같다.  그네 위에서 팔을 굉장히 늘이고 연꽃을 들고 있는 작품을 구상하고 있다.
김혜순     작품 속에 연꽃이 많다.

윤석남     연꽃을 보면 다시 되살아나는 느낌을 준다

김혜순     윤석남의 작품을 마주하고 있으면, 그 마주한 사람이 자신의 과거 혹은 자신들의 어머니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진다. 말하자면 작품의 안팎에 서사성이 내재한다. 작품 뒤 벽에 비치는 거대한 검은 그림자를 보고 있어도 마치 그 그림자에 두 개의 입술이 붙어 달싹거리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 입술의 이야기는 당연히 한국의 역사적 질곡과 함께할 것이고, 여성들의 드라마와 함께할 것 같다. 그와 아울러 작가가 들려주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자세하게 상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미술 장르란 서사성과의 기나긴 싸움의 결과물이라고 알려져 있지 않은가. 지금까지 이 세상에 집적된 회화에 대한 무수한 관념들과 자신의 작품의 이야기성이 싸우고 있다고 느끼는가.

윤석남     그것이 내게 최대의 관점이다. 내가 스스로 이것을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의 이미지라는 것이 서사성을 빼버리는 것이지만, 나는 무수한 얘기를 거기에 넣고 싶다. 그러니까 그림이라는 거대한 흐름과 나의 서사성이 충돌하게 된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은 이야기를 하고 싶다. 이것이 미술이 아니어도 좋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하고 싶다. 나는 그림의 영역을 넘어서 그것을 확장하는 것이라고 하고 싶다. 비록 그것이 부정된다고 하더라도 그렇다. 나에게도 멋있어지고 싶고, 근사해지고 싶은 욕망이 있다. 하려면 할 수 있다. 단순화해서 꽉 채우는 것도 할 수 있다. 하나로 다 얘기가 되는 작품을 하고도 싶다. 미니멀한 예술의 경지도 갈 수 있지만, 아직은 갈 때가 아닌 것 같다. 나는 나대로 가야 할 것 같다. 

김혜순     허난설헌이나 이매창을 거론했는데 작품들에서 느껴지는 신화적 분위기, 신화 속의 여성들이 가졌을 법한 표정들을 모른 체하고 지나갈 수가 없다. 작품들 속에서 신화 속에서 역할을 다하고 나면 지워지는 여성들의 얼굴이 보인다.

윤석남     이번 전시에는 〈푸른 얼굴〉이라는 제일 작은 작품이 있다. 소품이다. 굉장히 주술적인 느낌이 든다. 나는 내가 그린 그 얼굴에서 많은 암시를 받는다. 예컨대 이런 일이 있었다. 얼마 전에 내가 여행을 다녀온다고 하자 내 친구가 잘 다녀오라고 손을 번쩍 들었다. 나는 그때 문득 그것이 신화의 한 장면이라고 생각했다. 이별하면서 잘 다녀오라고 손을 흔드는 순간의 모습 속에서 그 순간의 신화가 솟아올랐다. 우리 신화, 결국은 가 닿아야 할 곳이 거기인 것 같다. 그래서 평면 작업이 필요한 것 같기도 하다. 또 한 가지는 나에게는 꿈이 있는데, 이루어질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지만 고증을 거쳐서 그 여성들의 영정을 그리고 싶다. 〈푸른 얼굴〉은 만드는 데 10분밖에 안 걸렸다. 끝나고 나서, 저 얼굴은 현실의 얼굴은 아니지만 분명히 현실에 존재하는 그런 느낌이다라고 혼자 생각했다. 남들은 잘 모르는 나만이 느끼는 것이다. 그 작품이 앞으로 작품의 변화의 단초가 될 것 같다. 

김혜순     신화는 읽는 자, 해석자의 것이다. 신화 자체의 힘을 느끼는 자의 것이다. 여성 신화는 반드시 이중의 독법을 요구한다. 그래야만 그 신화의 세계를 생산적으로 현재에 경작할 수 있다. 윤석남이 이미 그렇게 하고 있지 않은가. 윤석남 작품 속에는 정말 많은 얼굴들이 있다. 작품 속의 얼굴들을 바라볼 때 어떤 느낌이 드는지?

윤석남     제일 먼저, 무서운 얼굴이 안 되면 작품이 안 되는 것 같다. 무서운 눈으로 날 쳐다보는 것이 아니면 작품이 안 된다. 예쁜 것은 작품이 안 된다. 이것이 예쁜 것에 대한 콤플렉스는 아니다. 과천 현대미술관에 소장된 〈딸과 아들〉이라는 작품에서처럼 처음엔 온화하고 따뜻한 엄마의 얼굴을 했는데, 작품을 하면 할수록 그런 얼굴이 나에게 만족스럽지 않았다. 누군가는 내 작품에 귀신이 나올 것 같다고 하는데, 나는 나의 작품에 귀기가 어리는 것이 좋다. 

김혜순     윤석남만큼 타예술 장르 특히 영화와 문학에 탐닉하는 작가를 본 적이 없다. 문학 작품 세계는 화가인 윤석남에게 어떤 방식으로 개입하는가.

윤석남     〈빛의 파종〉전을 할 때 김혜순의 시를 노래로 만들어 미술관에 흐르게 했다. 효과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여성시인들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읽으면서 받는 영감이 구체적으로 나올 때가 있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문학 작품이냐고 꼭 집어서 하나를 얘기할 수는 없다. 그것이 뒤섞여서 나온다. 영화도 많이 본다. 소설도 엄청 읽는다. 아무리 감상적인 작품이라 할지라도 여성시인들의 작품이 와 닿는다.

김혜순     이번 전시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그 동안 참으로 많은 드로잉을 한 것 같다. 드로잉은 본 작품을 위한 시도일 수도 있고, 순간을 응축한 작가의 가장 내밀한 기록일 수도 있고, 작가의 가장 현재적인 서정의 발현일 수도 있다. 드로잉 작품을 보니 대형 설치 작품에서는 볼 수 없는 에스프리가 차고 넘친다. 드로잉을 할 때와 거대한 나무 작업을 할 때의 감성은 어떤 차이가 나는가. 드로잉이 설치 작품을 할 때 어떤 개입을 하는가. 

윤석남     드로잉을 할 때 가장 행복하다. 나를 잊어버리게 된다. 어떤 날은 하루에 일고여덟 작품을 할 때가 있다. 머릿속에서 나오는 것들을 바로 현현할 수 있어서 그런 것 같다. 순식간에 나올 수도 있고, 어떤 것은 하루 종일 힘들 때도 있다. 드로잉은 집약적이다. 기록적이고 자기 내면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나무 작품은 시간이 걸린다. 나무 작품을 하다보면 본래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이 빠지고 변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그런 과정 속에서 느끼는 희열도 있다. 드로잉이 내 체질에 맞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드로잉은 공간을 뛰어넘는다. 설치는 공간을 차지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공간을 뛰어넘을 수 없다. 그래서 앞으로 공간을 뛰어넘는 평면 작업으로 돌아갈지도 모르겠다. 

김혜순     마리솔의 작품을 예로 들어보자. 미국에서 이방 여성인 그녀의 작품은 차라리 미술사 내부에서보다 민족지학이나 민속학에서 다루어지게 되지 않았는가. 윤석남의 작품이 여성주의적으로 해석되는 면, 너무나도 한국적인, 그리고 여러 가지의 레디메이드된 오브제를 이어 붙이는 것 등등으로 민족지학적이거나 여성주의적인 해석이나 중심에서 제외된 주변적인 평가를 받게 되는 것을 두려워해본 적은 없는가. 물론 그것이 여성의 역사를 주변화한 과거에 대한 반성이 없는, 기존의 미술사에 대한 권위를 추종하면서 주변과 중심을 나누는 사람들의 구분법이라 해도, 미술사 내부에서 거론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두려워해본 적은 없는가. 

윤석남     서사성을 질문했을 때와 마찬가지 맥락에서 이 얘기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작품의 민족지학적 색채는 매우 위험하다고 본다. 왜냐하면 그것의 내용은 보지 않고 이국적인 면만 보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내가 해결해야 될 문제다. 그것을 버린다는 것이 아니라, 어떤 면에서 여성주의적이고 민족지학적인 면을 극대화함으로써 해결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반대로 소위 말하는 세계화된 것은 더 위험할 수 있다. 자기도취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로컬리즘이 결코 왜소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변주하고 상대방을 어떻게 설득시킬 수 있는가는 개인의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그것을 죽을 때까지 버리지는 못할 것 같다. 여성주의적인 것은 어쩔 수 없이 소외된다. 한국 화단도 남성이 주도한다. 그것을 두려워하고 싶지는 않다.

모성, 역사 그리고 여성의 자기진술 - 조혜정
Gushing Tears from Wistful Totems - Kim Hye-s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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