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뒤흔든 여자들: 윤석남의 여성독립운동가의 ‘채색 초상화’
김현주︱추계예술대학교 교수
윤석남은 한국 사회에서 여성 주체의 삶을 드러내는 예술에 반평생을 바쳐온 작가로 유명하다. 작가의 어머니, 치열한 삶의 현장의 기층 여성 노동자들, 한국의 여성(주의)문화를 함께 개척해 온 작가의 벗들처럼 현실 세계의 여성에서부터 허난설헌, 최승희, 김만덕, 바리공주 등 역사와 설화 속 인물에 이르기까지, 40년 동안 여성으로서의 경험과 상상력에 기반해 폭넓은 스펙트럼의 여성상을 그려왔다. 그녀는 여성 주체의 발굴과 재조명 작업 및 인간중심주의를 넘어 다른 생명체와의 공생을 위한 여성주의적 성찰을 화두로 삼았고, 그런 화두를 20세기 한국 미술계를 지배해 온 빈약한 남성중심적 상상력에 대한 대안적 예술 언어의 개발과 더불어 전개해 왔다. 유화와 아크릴화로 시작된 그녀의 작업은 1990년대 나무 조각과 설치로 전환되었고 2000년대의 종이를 이용한 대형 공간 설치로의 확장과 최근 채색화까지 변화를 거듭해 왔다. 유연한 작업 방식을 취해 온 작가는 작품의 주제와 본인의 감성에 공명하는 최적의 표현 방법을 찾아내고 새로운 방법을 연마하는데 지칠 줄 모른다. 그런 유연성은 국내의 제도권 미술교육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었던 배경과 무관하지 않은데, 그녀는 자신의 약점을 오히려 장점으로 승화시킬 줄 알았다. 그리고 여성주의에 대한 변함없는 신념과 특유의 뚝심으로 현재까지 국내 여성주의 미술을 견인차하고 있다.
윤석남은 2016년 또 하나의 변곡점을 거치며 ‘채색 초상화’라는 새로운 작업을 시작했고 점차 성공적으로 안착해 가는 과정에 있다. 2015년 서울시립미술관의 초대로 개인전(《윤석남♥심장》)을 마친 직후 오랫동안 미뤄온 채색화에 대한 도전을 결행했다. 평소 한국의 전통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작품에도 무속이나 제의적 요소들을 반영해 오던 터라 크게 이상할 건 없다. 그러나 젊은 나이도 아니고 평생 서양화 어법으로 작업해오던 작가가 동양화 재료와 기법에 도전한다는 것은 한국미술계에서 전례가 드물고 무모할 정도다. 한국 여성주의 미술의 대모라는 타이틀이 부담스럽긴 해도 기존 작업에 안주할 법도 한데 그녀는 왜 이런 모험을 감행할까? 주변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점이다. 그 계기에 대해서 작가는 한결같이 윤두서의 자화상을 처음 보았던 순간의 경험을 언급한다.
윤석남은 2011년 가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초상화의 비밀》 전시에서 조선시대 사대부 화가인 윤두서의 《자화상》(18세기, 종이에 색, 해남 녹우당 소장)을 직접 보았다. 그의 자화상은 인물의 내면의 기운을 탁월하게 표현하고 있어 조선시대 초상화 중 수작으로 꼽힌다. 당시 초상화 양식과 달리 정면상을 취하고 있으며 날카로운 눈매와 사방으로 뻗은 수염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눈길을 사로잡는다. 원래 그려졌던 귀와 어깨 및 의복의 선이 세월이 흐르며 사라지고 색이 바래며 그 얼굴에서 독특한 아우라가 뻗쳐 나오는 듯하다. 윤석남은 윤두서의 자화상과 마주친 그 순간을 “마치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는 것”같았고, 한 작품이 영혼을 뒤흔들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고 표현했다. 그날 윤석남의 특별한 경험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서 프랑스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가 강조한 타자의 얼굴과의 마주침의 중요성을 적용해 보는 것이 도움이 될 듯 하다. 레비나스에 의하면 얼굴은 타자가 스스로를 드러내 보이는 존재 방식이며 타자는 나에게 얼굴로 현현하며, 무엇보다 눈은 타자가 내 앞에 현존함을 보여주는 가장 특별한 통로가 된다고 주장하였다. 타자와의 마주침에 의한 주체의 절대적 윤리를 주장하기 위해 그는 타자의 얼굴이 그림으로 접근할 수 없다고 했지만,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과거의 인물과의 마주침은 타자의 얼굴을 대체하는 자화상이나 사진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다. 다른 시간을 살았던 윤두서는 타자의 얼굴을 가지고 윤석남 앞에 현현했다. 자화상을 통해 그의 얼굴과의 마주침은 일생일대의 중요한 사건으로서 타자를 향한 그녀의 의식이 깨어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최근의 여성 초상화는 당시 깨우침이 도달한 미래라고 하겠다.
윤석남은 2015년 말부터 민화 작가 김현자(경기무형문화재 제 28호 이수자)를 소개받아 약 3년 동안 일주일에 하루는 그녀의 작업실에 나가서 민화 제작 방법을 통해 채색화 기법을 익혔다. 화실로 돌아와서는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투시하고 수없이 많은 자화상을 그려가며 자기 성찰과 사실적인 묘사력 및 필력의 향상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초기 수묵 자화상은 색 한지를 사용하고 부분적인 채색을 거쳐 자유롭게 채색을 운용하는 오늘의 초상화에 도달했다. 실험 단계에서 제작된 2016년의 자화상들에는 작가의 나이를 드러내는 얼굴 주름의 사실적 묘사가 두드러지고 강렬한 눈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무엇보다 마치 기운생동하는 듯 사실적으로 표현된 머리카락에서는 윤두서의 자화상에서 내면의 기운을 받아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듯한 수염이 연상된다. 윤두서의 자화상을 통해 초상화에 관심을 가지게 된 작가는 초상화의 전통을 연구하다가 두 가지 사실을 발견하였다. 초상화는 전통적으로 채색으로 그려졌다는 것과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세운 조선시대의 초상화는 사실적 묘사를 중시했는데 내외법으로 인해 여성 초상화가 거의 그려지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한편, 광복 후 미술계에서는 채색은 일본미술 전통, 수묵은 한국미술 전통으로 편리한 이원화가 진행되었고, 일제 잔재를 척결한다는 명분에 따라 채색화가 미술계에서 오랫동안 배척되어 왔다. 2000년대 들어서야 채색화에 대한 재평가 작업이 일정 성과를 거두며 동시대 미술 형식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는데, 이런 변화는 우리 사회를 강타한 민화붐이 한 몫을 했다. 여성초상화와 채색은 한국문화 속에서 배제되어온 타자로서의 역사를 공유한다. 윤두서의 자화상과의 마주침에서 시작된 윤석남의 각성이 여성의 채색 초상화로 귀결된 배경에는 한국문화에 내재된 이 같은 타자의 역사에 대한 뼈아픈 인식이 자리한다. 그녀의 초상화는 재료와 기법에 따르면 채색화고, 장르와 주제에 따르면 인물화 중 초상화며, 더 세분하면 여성초상화이다. 즉 ‘채색으로 그린 여성초상화’인데, 이 글에서는 아직 그것을 부를 수 있는 가장 적합한 말이 떠오르지 않아 맥락에 따라 임시로 ‘채색 초상화’ 또는 ‘채색 여성초상화’라고 부르기로 한다.
2018년 학고재의 개인전은 본격적으로 펼쳐질 채색 초상화 작업의 예고편이었다. 늦은 나이에 채색에 도전하는 작가의 모습을 필자는 줄곧 가까이서 지켜보았는데, 강단과 예술적 내공으로 다져진 작가도 새로운 작품에 대한 미술계의 반응에 대한 불안감을 종종 내비쳤다. 다행히 2018년 두 차례의 개인전에 출품된 자화상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들을 수 있었고, 그에 자신감을 얻은 작가는 채색의 숙련과 더불어 앞으로 여성 인물 중 누구를, 어떻게 그릴 것인가를 진지하게 질문하기 시작한다.
2019년 팔순을 맞은 그녀는 《윤석남, 벗들의 초상을 그리다》 (OCI미술관)라는 개인전에서 작가의 길을 걸어오는 동안 버팀목이 되어준 22명의 생존하는 여성들의 대형 초상화를 발표했다. 먹의 부드러운 필선과 선명한 채색, 인물과 배경의 사실적 묘사에 의해 개인의 정체성을 드러냈으며, 특히 얼굴과 눈을 통해 인물의 내면세계를 포착하려고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몇 달에 걸쳐 제작된 것이다 보니 뒤에 그린 초상화일수록 새로운 기법에 숙달되어 인물 표현과 색의 사용이 자연스럽다. 초상화의 주인공은 대부분 미술가와 문인, 비평가와 큐레이터, 연극인과 가수 등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는 여성 문화인들로서, 한국 사회에 깊이 자리한 유교적 가부장제 문화 구조에 맞서 평생 각자의 영역에서 기존 문화에 틈을 만들고 성평등 문화를 만들기 위해 자기 역량을 발휘해 온 여성들이다. 22개의 초상화는 개성을 띤 단독 초상화로 제작되었으나 한 공간 속에 한꺼번에 펼쳐지자 거대한 집단 초상화의 효과를 발휘했다. 그 앞에서 우리는 작가의 여성주의적 가치를 담은 예술이 다양한 분야의 문화 현장을 누비고 있는 여성들과의 경험적, 지적 교류를 통해 생성되고 확장되었음을 목격한다. 윤석남이 그린 벗들의 초상은 힘든 길을 함께 해온 여성들에 대한 오마주이자 가부장 사회에서 간과되어 온 여성들 간의 지속적인 우정과 유대의 증거이기도 하다. 벗들의 초상화는 페미니즘 문화운동에 자극받아 메리 베스 에델슨이 제작한 여성예술가들의 집단 초상화(<미국의 생존하는 여성예술가들: 최후의 만찬>, 1972)처럼, 1970-80년대 미국의 여성주의 작가들에 의해 제작된 여성 초상화에 상응하는 면이 있지만, 그런 선례들과는 차이가 있다.
《싸우는 여자들, 역사가 되다》라는 제목으로 열리는 이번 학고재 개인전에서 윤석남은 드디어 본궤도에 오른 채색 여성초상화를 보여준다. 여성독립운동가 14인의 대형 채색 초상화와 설치작 <붉은 방>이 전시될 이번 전시를 위해 윤석남과 소설가 김이경은 몇 달간 협력하며 인물을 선정했다. 김이경은 기록과 문헌을 바탕으로 14인의 독립투쟁을 소설 형식으로 각색하고 소개하는 글쓰기 작업을 맡았고, 윤석남은 김이경의 글을 참고해 그들의 초상화를 제작했다. 김이경의 글은 전시에 맞춰 책으로 발간될 예정이다.
이번에 소개되는 14인(강주룡, 권기옥, 김마리아, 김명시, 김알렉산드라, 김옥련, 남자현, 박자혜, 박진홍, 박차정, 안경신, 이화림, 정정화, 정칠성)은 일제강점기 여성운동과 구국을 위한 항일운동에 투신한 여성들이다. 여성독립운동가라면 자연스럽게 유관순을 떠올리는 우리 현실을 고려할 때 대부분의 이름이 낯설 것이다. 수많은 여성들이 남성과 함께 독립투쟁을 했지만 오랫동안 잊혀지고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여성학자나 여성운동가들이 주축이 되어 여성독립운동가들의 발굴 작업이 꾸준히 진행되어 왔다. 평생 여성독립운동가들을 발굴하고 알리는 작업에 앞장 선 이윤옥 시인은 근 10년 동안 그들의 삶을 시로 풀어 10권의 책으로 발간하기도 했다.(『서간도에 들꽃 피다』) 그런 노고 덕분에 새롭게 발굴되고 국가의 수훈을 받는 여성독립운동가의 수는 매년 조금씩 늘어나고 있는 추세지만, 여전히 남성의 2-3%밖에 못 미치는 수준이라고 한다. 그나마 최근 몇 년간 대중적 성공을 거둔 영화 “암살”(2015)과 TV드라마 “미스터 선샤인”(2018) 같은 영상물에서 여성독립운동가들의 삶이 재조명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인 현상이다. “암살”에서 전지현이 연기한 안옥윤은 남자현을 모델로 했으며, 이번 전시에서 만날 수 있다.
강력한 국민국가를 기반으로 열강들이 세계패권을 다투는 상황에서 식민지 시대 한국인들은 민족주의적인 국민국가로의 변화를 열망하였고, 그 열망은 1919년 3.1운동으로 폭발하였다. 3.1운동은 남녀노소가 참여한 거족적인 민족 민중 운동이었으며, 여학생과 신여성, 기생, 노동자 할 것 없이 수 많은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3.1운동을 계기로 개화기부터 싹터온 여성 해방의 기운은 기층 여성들에게도 널리 확산되었다. 여성들은 3.1운동 등 민족독립을 위한 다양한 사회 참여를 통해 자긍심을 느끼고 여성도 인간이며 민족의 일원이란 자각을 갖게 되었다. 그들에게 항일투쟁은 가부장제 억압에서 벗어나 평등한 인간으로 인정받기 위한 여성 해방운동이자 식민지배에서 벗어나는 민족운동과 진배없었다. 1920년대 들어 사회주의가 전 세계로 퍼지자 민족주의 계열과 사회주의 계열의 여성들은 여러 단체를 조직하고 민족 독립을 위한 활동을 계속 전개해 나갔다. 14인의 초상화 중에는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을 했던 인물들(김명시, 김알렉산드라, 박진홍, 박차정, 정칠성)이 여럿 포함되었다. 그 중 김명시, 이화림, 정칠성은 그런 활동으로 인해 여전히 국가 서훈을 받지 못하고 있다. 여성들이 독립운동에 투신하게 된 계기는 각자 달랐지만 모두 죽음을 불사하며 독립을 위해 국내외를 종횡무진 누볐고, 그녀들의 활동 거리를 연결한다면 아마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민족 독립에 능동적으로 투신한 여성들은 여성교육과 의식화 운동, 생존권 투쟁, 항일 독립운동, 무장 투쟁 등 다양한 방법으로 활동을 전개하며 독립에 기여하였다.
윤석남은 여성독립운동가 14인의 얼굴과 독립운동의 방법을 알려주는 상황의 묘사나 단서를 통해 각자의 정체성을 드러내고자 했다. 그녀에게 얼굴은 타자의 존재 방식이자 나와 타자와의 정신적 교감을 위해 없어서는 안 될 요소다. 다시 말해 사진 등 얼굴을 알 수 있는 자료를 보지 않고는 그 사람을 그릴 수 없다는 말이다. 그리고 얼굴 중 특히 눈을 통해 내면의 기운이 전달된다고 생각해 항상 생생하고 강렬한 눈의 묘사를 중요시 여겨왔다. 얼굴 다음으로 손은 실행 수단으로서 크고 중요하게 묘사된다. 작가는 제일 먼저 작은 사이즈로 얼굴 드로잉을 하고 인물의 특성을 파악한 뒤에야 원본 크기의 초본을 만들어 한지에 옮기고 채색으로 마무리한다. 이번 개인전에서는 얼굴 드로잉과 소형 초상이 대형 초상화와 나란히 전시되어 초상화의 제작 과정을 동시에 볼 수 있다.
14인의 여성의 투쟁 방법은 의상과 소품, 배경, 또는 주변 상황의 간결한 묘사에 의해 전달된다. 독립운동이 계속 이동하며 위태로운 상황 속에서 전개되다 보니 당시 현장의 사진 자료는 희귀하다. 따라서 작가는 그들의 활동 상황을 역사적 사료나 고증을 거치기보다는 글을 읽고 상상해서 그렸다. 여성들의 독립운동이 겨우 알려지기 시작하는 단계에서 인물에 대한 상세한 정보없이 그들의 활동을 짐작할 수 있게 할 방법을 찾는 것이 아마도 작가에게는 가장 큰 고민거리였을 것이다. 초상화마다 약간의 편차가 있지만 그런 고민은 상당히 해소된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이미지 읽기에 어느 정도 익숙한 사람이라면 정자가 있는 풍경과 기와 지붕 위에 앉아 있는 강주룡의 모습에서 을밀대에 올라가 고공 노동 투쟁을 한 전력을 연결시킬 수 있을 것이다. 남자현이 독립의지를 전하는 혈서를 쓰기 위해 단지한 사실은 이미 잘려 나가 붕대가 감긴 짧은 왼손 약지와 작은 종지에 담긴 붉은 피로 직감할 수 있다. 김명시와 박차정, 이화림의 초상에서는 무장 투쟁을 짐작할 수 있고, 김마리아와 정칠성은 교육운동과 관련성이 보인다. 임시 정부의 살림을 도맡아 하며 독립자금을 모금해 전달하는 역할을 했던 정정화는 중국 의상을 입고 기차를 기다리고 있다. 14인의 초상화는 사실성에 기반해 초상화의 순기능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작가는 인물의 사실적 묘사에 그치지 않고, 화면을 꽉 채운 인물 배치, 평면적 배경에서 드러나는 인체의 생생한 볼륨감, 부분의 과감한 생략과 강조, 추상적인 배경 처리, 먹과 채색의 자유로운 운용, 필선의 강약 조절 등으로 예술적 효과를 극대화하고자 했다.
여성독립운동가를 알리는 이번 전시를 위해 윤석남은 특별히 <붉은 방>을 제작했다. 삼라만상을 도형으로 펼쳐내는 붉은 색 종이작업과 이름 없는 여성들의 나무 조각으로 채워진 <붉은 방>은 식민지 시대에 세상을 뒤흔든 모든 여성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오마주이다. 민족독립을 위해 죽어간 모든 여성들이 흘린 붉은 피와 사회주의 혁명을 외친 여성들의 열정, 여자도 평등한 인간이라는 여성들의 커다란 외침이 <붉은 방> 안에 넘쳐흐르고 우리의 마음을 뒤흔든다.
윤석남은 앞으로 여성독립운동가 100인의 초상을 완성하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아마도 2-3년 내에 100인의 초상화를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윤석남의 초상화는 여성의 독립운동을 널리 알리는데 기여할 것이다. 초상화의 수가 많을수록 그 효과는 커지리라 생각한다. 그 초상화를 통해 윤석남은 한국 사회에서 여성에게 민족과 국가가 무슨 의미인지, 그리고 우리가 지켜야 하는 ‘자립’이 무엇인지 진중하게 묻고 있다. 세상은 크게 변했지만 동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그 물음은 과거형이 아니라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녀는 이번 개인전에서 채색화의 기법을 독창적인 어법으로 한 단계 발전시켜 그 물음에 다가가고 있다. 덧붙여 서양화와 동양화라는 애매한 경계선이 계속 유지되고 있는 한국미술계에서 윤석남의 채색 여성초상화는 둘의 경계 짓기 자체에 별 의미를 두지 않는 점에서도 과히 도전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