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로 확장된 母性’ 미술에 담다… ‘여성주의 선구자’ 윤석남
평생의 화업 모아 ‘윤석남·심장’ 展

서양화가 윤석남이 지난 1일 서울 중구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개인전 ‘윤석남·심장’전에서 작품 ‘김만덕의 심장은 눈물이고 사랑이다’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
김만덕의 이타적 삶을 거대한 심장 형상으로 표현했다. 김태형 선임기자
서양화가 윤석남(76)이 ‘한국 여성주의 미술의 선구자’라는 타이틀을 걸고 화업(畵業) 40여년을 돌아보는 ‘윤석남·심장’ 전을 서울 중구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갖고 있다. 정규 미술 교육을 받지 않고 40세에 독학으로 그림을 시작한 ‘미술계의 박완서’ 같은 인물이다. 자신의 어머니, 어시장의 여성들, 김만덕 이매창 허난설헌 등 사회와 역사 속 인물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여성적 삶을 모티브로 회화, 조각, 설치 등 다양하게 변주돼온 작품 50여점이 전시되고 있다.
그의 아버지는 최초의 영화감독이자 소설가, 기자였던 윤백남(1888∼1954)이다. 그런데 그는 세상에 이름을 알린 지식인인 아버지가 아니라 ‘국졸’ 출신 어머니를 평생의 모티브로 삼았다. 윤석남 화백을 지난 1일 전시장에서 만났다.
“나이 차가 많이 나는 아버지와 결혼해 39세에 홀로 되셨다. 물려받은 재산도 없이 두 살 막내까지 포함해 6남매를 혼자 키우셨다. 내게 ‘엄마’는 사랑과 신뢰의 대상이었다.”
헌신적인 어머니의 삶은 1986년 작 ‘손이 열이라도’에 상징화되어 있다. 아이 하나는 젖을 물리고, 또 하나는 팔에 안았다. 동시에 광주리를 이고, 돈을 세고, 절구질을 해야 하니 손이 여러 개로 묘사돼 있다.
윤석남은 모성이 남성들이 갖는 보편적 이미지, 즉 무한 헌신의 존재로만 이해되는 것에 반대한다. 그가 기억하는 어머니는 이타적 존재였다. 그는 “지방에서 정기적으로 광주리를 팔러 오시는 아주머니가 계셨다. 묵을 곳이 없는 그분을 열흘도 마다않고 올 때마다 그냥 재워주셨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요즘 엄마들은 제 자식만 아는 이기적인 존재가 되어가는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이런 어머니의 이미지가 사회적으로 확장된 게 조선시대 여성 이매창, 허난살헌, 김만덕이다. 장사로 쌓은 부를 기근으로 고통 받는 제주도민을 위해 쾌척했던 김만덕의 ‘뜨거운 심장’을 형상화한 설치작품 ‘김만덕의 심장은 눈물이고 사랑이다’가 전시돼 있다.
윤석남이 이매창 허난설헌 등 지적 갈구가 높았던 여성들에게 헌사를 바치는 데는 그의 삶과 닮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 3년 만에 용감하게 개인전까지 열었던 아줌마 화가는 또 한번의 도전에 나선다. 1982년 뉴욕 유학을 감행한 것이다. 그는 “대학 중퇴라 사실상 고졸이었다”며 “영어가 안 들려 지하철을 타도 노선표만 뚫어지게 봤다. 그래도 온전히 나를 위해 투자하니 얼마나 좋던지. 1년을 10년같이 미친 듯이 배웠다”고 했다. 잭슨 폴록이 다닌 ‘아트스튜던츠리그’에서 1년을 공부했다.
요즘 스펙 쌓기에만 매달리는 청년들이 안타깝다고 했다. 그는 “정말 하고 싶은 게 뭔가를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 길로 매진하다보면 먹고사는 문제는 저절로 해결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페미니스트 작가로 한정지어지는 것에도 거부감이 없다. 오히려 그 길을 끝까지 밀어붙이고 싶고, 앞으로는 역사에 기록되지 못한 숨어 있는 보통 여성들을 발굴해 작품화할 계획이라고 소개했다. 전시에는 버려진 너와 조각, 목재소에서 폐기된 자투리 나무, 닳아빠진 빨래판 등을 이용해 만든 작품들이 대거 선보인다. 버려진 것이 그의 손을 거쳐 재탄생하므로 이 역시 모성적 작업이다. 6월 28일까지.
손영옥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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