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다정해서 다정한 다정씨] 모성 깃든 드로잉을 그림책에 담았다
글·그림 윤석남, 구성·기획 한성옥/사계절

눈 밝은 기획자의 감각 덕분에 멋진 컬래버레이션 그림책이 탄생했다.
한국 페미니스트 작가의 대모로 불리는 윤석남(77)씨는 지난해 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원로작가 초대전 ‘윤석남-심장’전을 가졌다. 일기 쓰듯 그려온 드로잉도 전시됐다. 대형 조각이나 설치 작품에 눈길에 쏠려 대부분 스쳐가듯 보던 이 드로잉 작품에 주목한 이가 있다. 그림책 작가 한성옥씨다. 드로잉에서 ‘다정’을 읽어내고 감동했던 한씨는 이를 엮어 그림책을 낼 구상을 한다. 드로잉마다 깨알 같은 손 글씨가 적혀 있어 저절로 그림책의 글이 됐다.
두 아이를 키우고 마흔이 넘어 독학으로 화가의 길을 개척한 윤씨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가족을 위해, 사회를 위해 헌신적으로 살아온 이 땅의 모성이다. 그림책은 화가 자신의 삶에 대한 회고와 함께 주변에서 만난 여성들이 이야기로 구성됐다.
아이 낳고 살다가 마흔에 자신의 방을 갖게 됐을 때의 기쁨, 늦깎이로 화가가 되고자 했을 때의 불안과 두려움, 스물일곱부터 함께하며 백만 번은 전쟁한 것 같은 남편, 자식 여섯을 키우면서도 명랑함을 잃지 않았던 어머니, 약수터에 와서 한참을 재잘거리다 정작 약수통은 두고 간 꼬부랑 할머니….
책이 울림을 갖는 것은 희생적 모성에 대한 무조건적 찬사로 끝나지 않기 때문이다. 여성도 자신만의 인생이 있음을 자연스럽게 얘기한다. 사랑과 일 가운데 사랑을 택했던 어머니 세대와 달리, 일에만 파묻혀 살며 결혼은 차차 하겠다는 딸에게 두 손 번쩍 들어 환영하는 모습 등이 그렇다.
아이들보다 어른, 특히 여성들이 더 공감할 그림책이다. 전시장에서나 볼 수 있는 그림을 책 한권으로 소장하는 듯한 기분은 덤이다. 출간을 기념해 오리지널 드로잉을 모은 전시가 3월 8일부터 20일까지 서울 종로구 삼청로 학고재갤러리에서 열린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기사원문보기: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432154&code=13150000&cp=n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