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 아트 – [저항하는 예술 ⑬] 싸우는 여자들, 꺾이지 않는 마음

최은규 에디터

아름다운 이 땅에 금수강산에 단군 할아버지가 터 잡으시고로 시작하는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이라는 노래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100명이나 되는 위인들이 1절부터 5절까지 꽉 차게 들어 있는 긴 노래를 요즘은 어린이집에서도 배우는 모양이다. 네 살배기가 발음도 잘 안 되는 목소리로 힘차게 부른다. 듣다 보니 문득 이 나라를 세우고 지키기 위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애를 썼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초중등 교과과정에서 줄곧 나왔고 시험 문제에도 빠지지 않았던 역사 인물들이다.

그런데 그 100명 중 여성은 단 5명(신사임당, 논개, 황진이, 유관순, 심순애)뿐이다. 역사의 격랑 속에서도 여성들은 예전 여자고등학교 교훈들처럼 ‘고결, 정숙’하게 ‘착한 딸, 어진 어머니’ 노릇만 했던 것일까. 그렇지 않다. 구국의 시간에 남성과 다름없이 여성도 몸을 바쳐 나섰던 역사가 우리에게 있다. 우울한 새해의 초입, 그들의 용기에서 힘을 얻어 보자.

1980년대부터 회화, 나무 조각, 설치 등을 주로 하던 미술가 윤석남은 2011년 《초상화의 비밀》전(국립중앙박물관)에서 <윤두서 자화상>(1710)을 보고 큰 감명을 받는다. 이후 새로운 조형 방식으로 채색화를 익히면서 여백을 통해 자유로움을 찾게 된다. 그는 여성 역사 인물 초상화가 거의 없는 데다가 항일운동에 투신한 많은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있음에도 제대로 기억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고, 그들의 초상화를 그리겠다는 결심을 한다.

그러나 그가 주제를 정했을 때 가장 당혹스러웠던 점은 100년 전 여성들의 투쟁사를 어디에서 찾고 연구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여성 독립운동가의 역사는 남성 독립운동가에 비해 덜 알려져 있고 사료도 부족하다. 그래서 그는 역사학을 전공한 김이경 작가와 협업하게 된다. 김이경은 문헌 자료를 바탕으로 여성 독립운동가 14인(강주룡, 권기옥, 김마리아, 김명시, 김알렉산드라, 김옥련, 남자현, 박자혜, 박진홍, 박차정, 안경신, 이화림, 정정화, 정칠성)의 투쟁 과정을 복원했다.

그것을 토대로 초상화를 그린 윤석남은 《싸우는 여자들, 역사가 되다》(학고재갤러리, 2021)에서 대형 전신 초상화 14점을 전시한다. 100인의 초상을 그리는 것이 목표라는 윤석남의 <여성 독립운동가 초상> 시리즈는 아직 진행 중이다. 2024년 부산비엔날레에서는 총 57점의 초상화가 전시되었다. 동시에 윤석남과 김이경은 초상화와 그 이야기를 담아 『싸우는 여자들, 역사가 되다: 세상을 뒤흔든 여성 독립운동가 14인의 초상』(2021)을 공저로 낸다. 책에는 항일운동을 하던 그들의 인생 역정이 1인칭과 3인칭 시점의 서술, 인터뷰, 다큐멘터리, 편지 등의 다양한 형식으로 담겨 있다.

『싸우는 여자들, 역사가 되다』표지 / 출처: 교보문고
『싸우는 여자들, 역사가 되다』표지 / 출처: 교보문고

일제에 맞서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독립 투쟁에 나섰던 그들은 이름도, 활동도 낯설다. 영화 <암살>에서 전지현이 연기한 독립군 저격수 안옥윤의 모델은 독립운동가 남자현(1872-1933)이었다. 의병이었던 남편의 뒤를 이어 만주로 건너간 남자현은 독립군 부대인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에 참여해 항일 무장투쟁을 한다. 만주를 방문한 국제연맹 조사단에 일본 지배의 부당성과 독립 의지를 알리기 위해, 왼손 무명지를 잘라 ‘조선독립원(朝鮮獨立願)’이라는 혈서를 쓰고 이를 잘린 손가락과 함께 조사단에 보내기도 했다. 1933년에는 주만주국 일본 대사 암살 계획이 발각되면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봄부터 한여름까지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모진 고문을 당한다. 결국 고문과 단식으로 인해 사망하게 된 그는 임종 직전 이런 유언을 남겼다.

내가 가진 돈은 모두 249원 80전이다그 중 200원은 조선이 독립하는 날 축하금으로 바치거라.(중략사람이 죽고 사는 것은 먹는 데 있는 것이 아니고 정신에 있다독립은 정신으로 이루어지느니라.”(싸우는 여자들역사가 되다, 156)

이후 아들 김성삼은 어머니의 유언대로 해방된 1946년 3월 1일, 서울운동장에서 열린 기념식 때 독립축하금을 전달했다.

윤석남, 남자현 초상, 2020, 한지 위에 분채, 210×94cm. /출처: 학고재갤러리
윤석남, 남자현 초상, 2020, 한지 위에 분채, 210×94cm. /출처: 학고재갤러리

독립운동가 박차정(1910-1944)은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집안의 영향을 받으며 성장했다. 여학교 시절부터 청년운동에 참여해 연행되는 일이 빈번했다. 이후 항일여성단체 근우회에서 여성운동과 민족운동을 이끌게 된다. 1930년 서울 여학생시위운동을 주도하면서 일제의 감시 대상이 되자, 중국으로 가서 의열단의 핵심 멤버로 활약하게 된다. 남편 김원봉과 함께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에서 교양과 훈련을 담당했으며, 1938년에는 조선의용대에서 부녀복무단 단장을 맡아 여자대원들을 훈련시키고 전투의 선봉에 서기도 한다. 결국 곤륜산 전투에서 입은 부상 후유증으로 인해 광복을 겨우 1년 앞두고 순국했다.

윤석남, 박차정 초상, 2020, 한지 위에 분채, 210×94cm. /출처: 학고재갤러리
윤석남, 박차정 초상, 2020, 한지 위에 분채, 210×94cm. /출처: 학고재갤러리

김마리아(1892-1944)는 3·1운동의 도화선이 됐던 2·8독립선언에 참여하고 독립선언문을 국내 지도자들에게 전하면서 거족적 독립운동을 촉구한 독립운동가다. 결국 3·1운동 배후로 검거되어 6개월 간 고문을 받고도 출감 후 바로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평생 고문 후유증에 시달리면서도 임시정부를 지원하는 등 적극적인 활동을 했다. 대한민국애국부인회 활동으로 재판을 받을 때 다음과 같이 당당하게 진술을 한다.

판사너는 언제부터 조선의 독립을 생각해 왔는가?

김마리아한시도 독립을 생각하지 않은 일이 없다.

판사여자가 어째서 남자들과 함께 운동을 했나?

김마리아세상이란 남녀가 협력해야만 성공하는 것이다좋은 가정은 부부가 협력해서 만들어지고좋은 나라는 남녀가 협력해야 이루어지는 것이다.”(싸우는 여자들역사가 되다, 14)

윤석남, 김마리아 초상, 2020, 한지 위에 분채, 210×94cm. /출처: 학고재갤러리
윤석남, 김마리아 초상, 2020, 한지 위에 분채, 210×94cm. /출처: 학고재갤러리

여성 독립운동가들은 나라를 빼앗긴 절망에 무너지고, 그 속에서 다시 희망을 꿈꾸고,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고, 온몸이 짓이겨지는 고문을 당하고, 감옥에서 청춘을 보내고, 감시의 눈을 피해 국경을 넘고, 펜을 쥐던 손으로 총을 들고, 가족들과 생이별하고, 소중한 아이를 잃고”(『싸우는 여자들, 역사가 되다』, 8쪽),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라고 물러서지 않았다. 저항을 멈추지 않고 싸웠다.

어떠한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두려움 없이 맞서는 용기는 어떻게 생길 수 있는 것인가. 이들이 목숨을 바쳤던 이 나라는 어떻게 지킨 나라인가. 그들의 복원된 이야기는 여러 가지 생각을 떠오르게 한다. 우리 역사에는 구국을 위해 몸 바친 독립운동가들이 많았고 그들 중에는 여자도 많았다. 이들의 헌신과 희생을 기억하자. 그리고 그들의 꺾이지 않는 마음을 보면서 힘을 얻자. 우리에게는 이렇게 씩씩한 언니, 누나들이 있었다.

출처: https://www.d-art.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33

데일리 아트 - [저항하는 예술 ⑩] 인간애와 연대 의식 – 윤석남의 페미니즘 미술
error: Content is protected !!
Scroll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