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人] 나는 소나무가 아닙니다… 나는 윤석남입니다
오는 16일부터 학고재갤러리서 개인전
“한국 여성주의 미술의 대표작가로 손꼽히는 윤석남의 개인전을 선보입니다.”
4년 만에 다시 윤석남(74)의 개인전을 여는 학고재갤러리는 작가 이름 앞에 ‘한국 여성주의 미술의 대표작가’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마흔 살에 뒤늦게 미술을 시작해 지난 30년간 여성주의 작품을 발표해온 그에게 아깝지 않은 수식어다. 그럼에도 작가 자신은 이러한 명명(命名)이 부담스럽다고 했다.
“누군가를 ‘무엇’이라고 명명하는 것에 거부반응이 있어요. 저를 두고 ‘여성화가’나 ‘대모’라고 규정하는 것도 사실 조금 거북해요. 인간은 명명하지 않으면 한순간도 살아갈 수 없다는 걸 알죠. 하지만 거부감이 생기더라고요.”
‘나는 소나무가 아닙니다’라는 전시명도 작가의 생각을 반영한 제목이다. 인간이 편의에 따라 식물을 분류하고 ‘소나무’라는 이름을 붙여 부르지만 이것이 소나무의 의지는 아니라는 것. 너무도 당연해서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던 것에 돋보기를 들이대는 것이 윤석남의 작업이다.

▲ 윤석남 작가가 15일 오전 학고재갤러리에서 열린 <나는 소나무가 아닙니다>展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너와’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유니온프레스 이혜원 기자
전시장이 한 폭의 숲… 한지 작품 9백여 점 모인 ‘그린 룸’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은 윤석남은 여성의 삶을 설치미술로 풀어낸 작업으로 이름을 알렸다. 주부로 살다 돌연 작가의 길을 걷게 된 시작도 ‘여성’이었다. 자신의 어머니를 그리는 일에서부터 윤석남의 작업이 시작됐다. 분홍색 소파, 분홍색 구슬, 분홍색 한지로 장식된 ‘핑크 룸’ 시리즈는 여성의 삶을 시각화한 그의 대표작이다.
인간중심의 사고를 배척하는 것 또한 그의 작업을 관통하는 주제다. 윤 작가는 유기견의 넋을 기리기 위해 나무로 된 강아지 조각 1,025개를 만드는가 하면 구제역으로 살처분된 가축들의 진혼제를 제안하기도 했다.
이번에 선보이는 ‘그린 룸’은 자연을 훼손하는 인간의 행동에 경종을 울리는 작품. 세 면의 벽에는 정사각형(30×30cm)의 한지가 바둑판 형식으로 9백여 점 가량 채워져 있다. 각각의 한지는 녹색 계열로 저마다 다른 문양이다. 그린 룸 한편에는 나무 테이블과 의자가 놓였다. 테이블에는 연꽃을 새겨 넣었다. 윤석남 작가는 “나무는 색을 굉장히 예쁘게 받아들인다”며 “물감을 흡수한 나무는 마치 본래 자신이 가지고 있던 색처럼 표현한다”고 했다.
전시장 바닥에는 녹색 구슬이 가득 깔렸다. ‘그린 룸’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녹색 벽면에 녹색 테이블, 녹색 바닥으로 가득 찬 전시장은 마치 숲속 풍경처럼 보인다. 자연 속 동식물의 영혼을 달래고자 하는 작가의 염원이 담긴 작업이다. “그린 룸 작업을 하며 치유를 받는 느낌이 들었어요. 미워하고 꼬부라진 마음이 누그러지는 느낌… 참 이상한데, 그렇더라고요.”

▲ 윤석남, 그린 룸, 2013 (사진=학고재갤러리)
폐기 처분될 운명에 놓였던 너와(나무로 만든 기와)로 만든 신작도 40점 가량 전시한다. 작가는 너와에 여성의 얼굴을 그려 넣었다. “너와는 할머니 이마의 주름처럼 나무에 주름이 새겨져 있어요. 너와 자체가 이미 형상을 가지고 있어서 어떤 것은 마치 노래 부르는 사람의 입처럼 보이기도 해요. 너와에서 이미지를 발견할 때마다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지 몰라요.”
핑크 룸에서 시작해 블루 룸, 화이트 룸, 블랙 룸, 이제는 그린 룸까지. 남들보다 데뷔가 늦었던 탓일까, 칠십대 중반의 나이에도 늘 새로운 작업에 도전한다. 윤석남은 “나이는 잊고 산다”면서도 몇 년 전부터 손가락 근육이 좋지 않아 가위질을 직접 하지 못 한다고 했다. 이번 작업에서도 칼질은 딸의 도움을 빌렸다고. “작가들은 건강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요즘은 건강 때문에 산에 다니고 있답니다. 몸이 허락하는 한 끝까지 작업을 하고 싶습니다.”
◈ 윤석남 개인전 <나는 소나무가 아닙니다>
- 일시 : 10월 16일(수)~11월 24일(일)
- 장소 : 서울 소격동 학고재갤러리 본관
- 출품작 : ‘그린 룸’, ‘화이트 룸’, ‘너와’ 등 46점

▲ 윤석남 작가의 핑크 룸, 블루 룸, 화이트 룸, 블랙 룸 시리즈 (사진=유니온프레스 전성규 기자, 인천아트플랫폼, 학고재갤러리)
http://www.unionpres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47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