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읽어주는남자] 윤석남의 ‘어머니’, 경기일보, 2015.8.6

사랑과 희생 속 ‘어머니의 삶’

20세기가 좌절과 저항과 독립과 분단과 전쟁과 산업화와 도시화, 그리고 자유화를 위한 도전과 민주화를 위한 열망이 들끓고 분출했던 역사였음을 기억하듯이, 그 각각의 분절과 욕망과 변화에서 우리는 남성성의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을 거예요.

사실 우리는 엄청난 시대적 도전에 맞서오면서 근육질의 초자본주의 도시사회를 만들어 왔잖아요.

그러나 우리는 그런 남성성의 반대편에서 좌절을 잊지 않으면서 저항의 아들을 낳고, 독립을 위한 탈주의 이산(離散)을 생성으로 바꾸었던, 분단과 전쟁의 찢겨진 상흔에서 굿하는 여성성의 거대한 ‘생-활력(生-活力)’을 또한 기억할 거예요. 살아서 살아 움직이는 힘이요, 생활하는 힘인 여성성의 어머니를 말예요.

예술가 윤석남 선생의 미학적 생성지는 ‘어머니’에게서 발원하는 여성성의 샘이었어요. 서른아홉에 혼자가 된 어머니, 여섯 남매를 키운 어머니의 우물은 윤석남 선생에게 마르지 않는 예술의 원천과 같았죠. 선생은 어머니라는 우물을 통해서 한국의 근현대사를 보기도 했고, 그 우물의 맑은 물로 남성성의 욕망이 저질러 놓은 도시사회의 아픈 그늘을 치유하기도 했어요.

‘어머니Ⅱ-딸과 아들’의 작품을 보세요. 어머니는 오른손으로 아기를, 왼손으로 또 등짐을 받치고 있고, 머리에는 과일 든 광주리를 이고 있지요. 어머니 옆으로 중학교 겨울 교복을 입은 아들과 어린 딸이 서 있네요. 아버지가 부재하는 상황에서 어머니는 아버지요, 어머니였어요. 한지에 사진 복사한 흑백의 배경은 어머니의 역사이면서 동시에 20세기의 역사라고 할 수 있지 않겠어요?

작가는 오래된 폐목을 콜라주 하듯 이어 붙인 뒤 그 위에 채색을 하는 방식으로 작품을 완성했어요. 자, 어머니를 한 번 볼까요? 어머니의 손, 팔, 얼굴과 저고리, 그리고 치마와 버선 신은 발과 광주리까지 열다섯은 족히 넘는 나무 조각들이 사용되었어요. 하나의 판목에 두어 개를 덧댄 아들과 딸의 모습과는 천연지차죠. 왜 그랬을까요?

어머니의 ‘몸’이 아이들과 이어져 있기 때문일 거예요. 그 아이들과의 선에서 살림이 싹터요. 게다가 그 선은 사회로 역사로 넓어져서 문화를 이룬 곳곳에서 불평등을 평등으로 바꾸고, 억압을 해소했죠. 그렇게 어머니의 몸은 알알이 미학의 씨알이 되었어요. 윤석남 선생처럼 우리 모두는 어머니를 먹고 자란 게 분명해요. 그러니 어머니의 존재로 21세기를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기사원문보기: http://www.kyeonggi.com/news/articleView.html?idxno=1010026

'윤석남 작가와 돌 문화 공원에서...' 2015.8.10
'미술 작품으로 '여성주의' 를 소환하다, 한라일보, 2015.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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