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단한 母·허난설헌·이매창…’, 문화일보, 2015.6.8

[문화] 신세미의 미술산책
고단한 母·허난설헌·이매창… ‘여성의 삶’ 담아낸 나무조각

캔버스 그림을 그리던 중년의 여성작가가 낡은 나무토막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친근한 색과 질감의 나무를 다듬고 채색해 보니, 자화상·자조상 같은 여성이었다. 손이 열 개라도 모자랄 만큼 힘들게, 외줄타듯 세파를 버텨내는 여성의 삶이 투영된 나무 조각들이다.

서울시립미술관의 ‘윤석남-심장’전(28일까지), 아트사이드갤러리의 ‘송진화-너에게로 가는 길’전(7월 8일까지)은 유독 나무 조각들이 돋보이는 전시다. 두 작가는 세대는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중년에 나무 작업을 시작해 여성을 형상화해 왔다. 한옥 목재 같은 버려진 나무판을 이어붙인 어머니상, 짧게 깎은 머리에 퉁퉁 부은 눈의 ‘웃픈(웃기지만 슬픈)’ 여성상, 작가를 빼닮은 나무 조각에 여성은 물론 남성조차 어머니나 딸을 떠올리며 자석에 끌리듯 작품에 빠져들게 된다.

서울시립미술관이 국내 원로작가 기획으로 초대한 윤석남(76) 씨는 국내 여성주의 미술의 선구자다. 평범한 주부로 살다가 1979년 40세 때 그림을 시작한 늦깎이 작가다. 처음엔 부친(영화감독 윤백남)과 사별 후 홀로 6남매를 키운 어머니를 그렸다. 나무를 다루게 된 것은 나이 50세 무렵. ‘여성의 삶’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한 작업은 1980년대 중반 ‘또 하나의 문화’ 등 연구자들과 교류를 거치면서 여성주의가 윤석남 미술 중앙으로 들어섰다.

▲ 윤석남의 2014년작 ‘허난설헌’.

이번 전시에는 어머니의 고단한 삶을 묘사한 1980년대 초기유화를 비롯, 여성뿐 아니라 환경·생명 소재의 나무 조각들이 대거 선보인다. 제주도민에게 구휼미를 제공한 조선 정조시대 거상 김만덕을 기리는 분홍색 심장 모양의 유리작품 및 역사 속 여성인물인 허난설헌과 이매창을 다룬 신작도 선보인다. 미니목각 999개로 이뤄진 1997년작 ‘빛의 파종’, 유기견 1000여 마리를 돌보는 이애신 할머니의 이타적 삶에 영감을 받은 2008년 작 ‘1025: 사람과 사람없이’, 작고한 어머니를 추모하는 2011년 작 ‘화이트룸-어머니의 뜰’ 등이 시대별 대표작이다. 작가가 일기쓰듯 색연필로 그린 1999∼2003년작 종이드로잉도 찬찬히 글과 메모를 살펴볼 것을 권한다.

한편 나무 조각가 송진화(52) 씨는 대학시절 전통 한국화를 전공했다. 한지수묵화를 그리던 그는 30대 후반 상여 장식의 목각 인형에 끌려 나무작업을 시작했다. 톱·끌 등으로 버려진 작은 나무토막을 깎고 보니 빡빡머리 자신을 빼닮은 모습이었다. 그후 15년여 작가의 분신 같은 ‘나무인형’들은 하트(♥)를 안고 있거나 유년기 아이의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나무의 결과 색, 옹이까지 신체 일부로 되살린 조각들은 ‘살아내기’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삐뚤어질 테다’ 등 제목부터 감정이입형이다. 3년 전 개인전 때는 소주를 병째 들이켜고 가슴에 칼을 품으며 일상의 불안과 서글픔을 강하게 드러냈던 작가, 신작은 ‘무섭지 않아’라는 제목처럼 한결 따뜻하고 편안해졌다.

미술 저널리스트

'두 여자의 작품에서 엿보이는..', 오마이뉴스, 2015.6.15
“지금은 따뜻한 마음, 배려가..", 여성신문, 2015.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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